■ 울림을 주는 시 한 편-74
金堤
서규정
언제여, 마른 꿈을 접어 날렸던 종이비행기는 농약 먹은 풀밭에
지금은 어떤 자세로 뒤집혀져 있는지 모르더라도
맑고 찬 하늘 부셔 오히려 눈물 나고, 흰 두루미 앉았다 뜨던
벌판은 벗어나야 비로소 벌판이겠지
모내기 논에서 동네 사람 몇 웃겨 놓더니, 세탁이나 이발
그 좋은 일자리 다 놔두고 배우가 되겠다고
노을에 물든 마을을 떠난 푼수를 기억하나요
미사일 기지촌으로 가는 트럭, 미군 무릎 위에 인형처럼 떠가던
양공주의 익다 만 미소와 같이
나라가 약하면 우는 일보다 호호실실 웃어야 할 것이 더 많았던
독재와 개발, 젊은 피를 팔러가던 월남전
지글지글 끓던 라디오와 흑백TV에서 듣고 본
서푼 짜리 익살로는 통하지 않던 격랑의 세월을 건너며
대체 무얼 하며 늙었을까
묻지 마세요
꾸욱 다문 입, 생략된 부분이 더 절창일 것이며
우리 삶은 한판 꿈이거나, 연극 같지 않던가요
산다는 건 새끼를 꼬듯 제 갈길 꾸불꾸불 꼬아가듯
백학, 한 모금의 물로 가슴을 적시자마자
긴 목과 다리를 일직선으로 비틀어 짜고, 날아가고 날아가던
金堤, 눈 속에 남은 물기들을 골고루 골라주던 트럭과 먼지의 나날
우리는 ‘트럭과 먼지의 나날’로부터, 그 폭력과 광기의 날들로부터 얼마나 멀어진 걸까? 그러나 오해 말자. 그 날들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 얼굴만 바뀐 채 우리 곁에 남아서 아직도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총 대신 자본으로 무장했을 뿐인 그들과, 온갖 썩은 내로 진동하는 이 악몽의 나날들이 더 이상 우리 곁에 머물지 못하게 해야 한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참여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 우린 ‘대체 무얼 하며 늙었을까?’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