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효도를 하고자 할 때에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표현한 풍수지탄(風樹之歎)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8일 노모를 모시는 문제로 열린 가족회의에 늦게 참석한 형수에게 흉기를 휘두른 60대 시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뉴스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아들과 며느리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양로원에 도움을 요청하는가 하면 상습 구타로 골절상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효가 으뜸 덕목이던 우리 사회에 어쩌다 이런 패륜 행각이 끊이지 않는지 참담한 심정이다.
가족의 무관심, 귀찮은 존재로의 치부로 인해 현재 독거노인은 지난 2000년 54만명에서 올해 119만명으로 2.2배 증가했으며, 오는 2035년에는 343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노인 10만명당 약 81.9명이 자살을 택하고 있지만 별도의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이다.
노인 문제는 가족 내부의 문제 등으로 치부되며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6·25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고난을 이기며 발전을 일궈온 이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효는 모든 덕행의 기본이며 모든 교육의 시발점이다.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어버이의 희생과 사랑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하지만 반인륜적, 반도덕적 행태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시인 바이런은 “인생은 어머니의 가슴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진한 눈물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존재한다. 부모의 얼굴을 바라보면 사랑의 위대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효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드리는 것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편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이것에 감탄하여 마음의 행복을 느끼며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여 부모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려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