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4 (목)

  • 맑음동두천 10.5℃
  • 구름조금강릉 16.2℃
  • 맑음서울 12.3℃
  • 구름조금대전 11.7℃
  • 흐림대구 18.1℃
  • 흐림울산 19.9℃
  • 흐림광주 13.0℃
  • 흐림부산 18.1℃
  • 흐림고창 9.4℃
  • 흐림제주 14.8℃
  • 맑음강화 11.3℃
  • 구름조금보은 11.5℃
  • 구름많음금산 11.7℃
  • 흐림강진군 13.9℃
  • 구름많음경주시 19.1℃
  • 흐림거제 16.6℃
기상청 제공

오광탁- 열개의 별 이야기((을 乙 - 사랑을 바라는 자)

   
을목(乙木)은 태양을 향한다. 해바라기 같은 그들의 눈빛은 아이와 닮아 있다. 어쩌라고, 세상엔 여리고 여린 생명들이 그토록 많은지 모르겠다. 그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들이 웃으면 나도 즐겁다. 정말 너무나 무서운 그들 앞에 결국 난 미소만 짓게 된다. 봄에 태어나는 푸릇한 새싹이며, 여린 꽃잎을 드러낸 수줍은 꽃이고, 뛰노는 아이들이 을목(乙木)이 된다.

하지만 난 그런 아이들이 싫다. 아직 내가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들을 돌볼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을목(乙木)은 언제나 친절한 보호를 필요로 한다. 따스한 미소로 대하고 포근하게 안아주며, 잘 못된 곳으로 뻗어가지 않게 가지치기도 잘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무럭무럭 자라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예쁜 꽃에서 훌륭한 열매를 맺고 반듯한 어른이 되어 그들이 받은 사랑을 세상에 다시 돌려준다. 그래서 을목(乙木)은 힘없는 백성이며 서민과도 같다. 충성스런 신하이며, 배신할 줄 모르는 착한아이와 같지만, 사랑이 없는 곳에선 고개를 돌린다.



엄마를 잃고 사랑에 버림받은 을목(乙木)은 운다. 여린 가슴으로 밤새도록 운다. 민초와도 같은 을목(乙木)은 김수영의 시에 나오는 풀과 같다. 그렇게 울다가도 조그만 햇볕과 조그만 사랑에 다시 일어난다. 신비로운 생명처럼 그들은 타인의 따스한 마음을 먹고 산다. 재잘거리는 아이처럼, 호기심 많은 소녀처럼, 작은 것에 놀라고 작은 것에 환호한다. 작은 것에 아파하고 작은 것에 만족한다. 배신의 아픔을 알면서 믿음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그들은 늘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사랑한다.

나는 그런 바보 을목(乙木)이 싫다. 언제나 그리운 눈빛으로 힘 있는 어른들을 바라보지만, 바쁘고 차가운 어른들은 그들을 귀찮아한다. 너무 쉽게 버림받고 너무 쉽게 이용당한다. 너무 쉽게 상처받고 너무 쉽게 일어선다.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도시의 들 고양이처럼 그들은 꾸역꾸역 살아간다. 아프면 아픈 대로,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이를 악물고 살아간다. 언젠가 사랑받을 그날만을 꿈꾸며 그들은 참고 또 참으면서 살아간다.



목(木)은 기억하지 못한다. 스스로 정화되고 치유되는 능력이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잊어버린다. 생명의 힘으로 과거를 희미하게 지우고, 오늘을 사는 그들은 진정한 바보들이다. 하지만 몸은 기억한다. 사랑받지 못했던 곳엔 다시는 못 간다. 배신당한 곳의 아픔이 몸에 새겨지면, 몸은 움츠려 든다. 그들은 오로지 마음으로만 산다. 아이의 겁 많은 두려움이 그들 안에 있어서 동물적 감각으로 사람을 알아낸다. 작은 미소, 작은 친절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들이 난 참 싫다. 세상에서 제일 속이기 쉬운 사람들이 을목(乙木)이니까 너무 위험해 보인다.



세상에 을목만 있다면, 진짜 대책 없을 것이다. 바보이반의 나라가 될 테니까. 너무 가슴 아파서 그냥 봐 줄 수가 없다. 그래도 꾸역꾸역 잘 사는 것 보면 진짜 신통하기만 한데, 어찌 그리 살 수 있나 싶다.

물론 독초가 돼버린 을목도 있다. 그래도 그들이 꿈꾸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지지해줄 따라갈 그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마음과 마음을 잇고 손과 손을 맞잡고 싶어 한다. 음식을 나눠먹고, 수줍은 듯 즐거워한다. 멋진 작품이나 음식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은 우리들에겐 꽃과 같다. 그럴 때 우린 박수를 쳐주고 칭찬을 해주고 사랑해주어야만 한다. 안 그럼 삐치고 상처받는다.

을목은 재능이 많은 아이다. 내게도 을목이 있다. 그래서 참 싫다. 사람들의 사랑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내가 싫다. 괜히 나대다가 상처받고 꾸지람 들으면, 을목은 시든다. 나 같은 허접한 능력을 가진 마음 여린 을목은 매일 운다. 예쁜 꽃이 되지 못해 무시당하면, 억울함만 쌓인다. 밝은 태양이 있어서 작은 웃음과 미소를 보내주는 그런 사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을목(乙木)은 사랑을 배신하지 않지만, 사랑 없는 곳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 여리고 예쁜 찡얼거리는 을목을 너무 뭐라 하거나 미워하진 말자. 사랑으로 키우면 그들은 강하게 자라나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동산을 보는 것만큼 아름다운 감동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