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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83 l 이면의 무늬 l 홍일표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3



이면의 무늬


홍일표

개가 개의 꿈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파도의 자세를 이해하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
공원의 가로등은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았는데
불이 켜지네

겨울이 명백한 휴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은 내리고
가로등은 끊임없이 어둠의 중얼거림을 거절할 뿐이네
발꿈치에 다른 계절이 눈물처럼 스미는 것
천 년 전 바람이 남긴 말의 각질을 뜯어내며
질기고 딱딱한 공기의 살과 해후하네

나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너의 노래를 들으며
여기는 최소한 거기가 아닌 곳이라고 중얼거리지만
여전히 촛불은 미완의 음악
따듯하게 응고된 슬픔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견디는 것

그 사이 수차례 다녀간 눈과 비
봄과 겨울도 모르는 또 다른 목청의 노래가 발바닥이나 겨드랑이에 서식하는 걸
아직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파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네
5분간, 내가 읽지 않은 파도의 표정이 거듭 쓸쓸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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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홍일표 시인의 시집 『매혹의 지도』를 펼쳐 봅니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명왕성에 라일락이 피는, 혹은 457년 만의 두 행성의 충돌이라고 명명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이 시집은 그 흔적의 기록”임을 밝히고 있네요. 한 해를 보내며 미처 돌아보지 못한 ‘이면의 무늬’를 떠올려 봅니다. 이면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볼 수 없는 ‘무늬’는, 의미론적 환원을 거부하는 상상적 물질성으로 가득하지요. 개가 자신의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듯,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파도’가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시인이 모든 존재들의 “응고된 슬픔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견디는” 동안, 우리는 “수차례 다녀간 눈과 비/ 봄과 겨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니체는 “실존의 영원한 쾌락”은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서 찾아야만”한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의 이면을, 현상의 배후를 바라보는 시적 여정에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송년과 신년의 경계 지점에서!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