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후안 헬만/성초림 옮김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다
꽃 한 송이 내 피를 떠돌았다
내 마음은 바이올린이었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
나를 사랑해 주었다. 봄,
맞잡은 두 손, 행복함에 나도 즐거웠다.
내 말은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새 한 마리 눕는다.
꽃 한 송이.
바이올린 하나.)
후안 헬만(1930-2014)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청년공산당에 가입한다. 호르헤 비델라가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하기 1년 전, 그는 망명을 한다.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며 독재자를 비판하고 저항한다.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군사독재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임산부였던 며느리가 감옥에서 출산한 아기는 우루과이로 입양되었다. 아르헨티나에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는 멕시코에서 살다 생을 마감했다.
「묘비명」은 그 자신의 묘비명을 상정하고 쓴 시가 분명하다. 시인의 가슴에 살았던 새는 자유의 상징일 것고 군부독재에 의해 억압당하는 자유에의 기원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피를 떠돌고 있었던 꽃 한 송이는 저항정신의 상징이다. 그의 마음이 바이올린이었으면 그는 운명적으로 시인일 수 밖에 없다. 어떤 글에서 바이올린은 그의 심장이이라고 쓰기도 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으며 봄은 때로 그를 사랑해주기도 했다. 그 계절에 맞잡았던 손이 있어 행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말은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묘비명을 읽는 사람들을 일깨운다. 그의 무덤에 눕는 것은 새 한 마리와 꽃 한 송이와 바이올린 하나다. '문학의 숲' 간 『새 한 마리 내 안에서 살았지』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