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제2공화국 때 처음 도입됐다. 이후 박정희 5‧16쿠데타로 뼈아픈 단절을 맞았고, 1995년 다시 부활했다. 지방자치제는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권위주의를 탈피해 관공서 문턱을 낮췄다. 하지만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26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방자치에 대해선 회의적 부분이 많다. 제도적 모순과 인물론이 거론되는 것은 물론 고질적 병폐가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용인지방자치의 허와 실을 진단해본다. -편집자 주-
# 지방자치제는 ‘무한 자유와 책임’
프랑스 지방자치제는 1982년 도입되면서 중앙권력이 대폭 지방으로 이전됐다. 우리나라처럼 광역과 기초단체로 구분된다. 국가기구의 지원은 재난과 지방이 해결할 수 없는 국가 사안에만 제한한다. 지방행정에 관한 전권은 자치단체가 갖는다.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단체장과 의회의 수장이 같다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용인시의회 의장이 시장을 겸직하는 것이다. 시의회 의원은 주민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단체장은 시의원 중 의장에 선임된 사람이 맡는다. 프랑스의 지방자치제는 무한한 ‘자유와 책임’을 대명제로 시행 중이다. 프랑스의 최소 행정기구인 꼬뮌(Commune)을 우리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공동체’로 볼수도 있다.
# 아직도 요원한 지방분권
1995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복원된 지방자치는 형식적인 면에서 굳건히 뿌리내렸다.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으니 사반세기가 넘었다. 중앙정부가 도지사와 시장‧군수를 임명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나 다름없다. 지방자치제 정착은 형식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고, 중앙정부에 예속되어 있다. 다행히 용인시는 내년엔 특례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지만, 온전한 지방분권화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재정의 권한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얼마나 이양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 온전한 지방분권은 개헌이 필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근본적인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단일 중앙집권체제를 허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헌을 해야하고, 그 개헌안에 지방분권까지 담아냈어야 한다. 그러나 임기 1년이 채 남지 않았으니 개헌은 물 건너갔다. 지난 4.7 보궐선거는 서울‧부산시장 등을 뽑는 선거였지만 정권심판 프레임에 걸린 민주당이 대패했다. 1년 잔여임기에도 정당공천제 덕분에 내년 3월 치러질 대선 전초전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원 자질론
용인시는 지방자치제 이후 역대 단체장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된 흑역사가 있다. 기초‧광역의회, 심지어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시의회 의장이 탄핵 또는 사법처리를 받은 바 있고, 각종 비리 및 추문 때문에 용인시가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뻗친 사례 또한 많았다. 심지어 음주사고, 원조교제, 절도, 부동산투기 등 사례도 다양했다.
주민들로부터 감시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인 단체장과 의원들이 자신과 지역구 잇속 챙기기에 급급, 혈세 낭비는 물론 지방자치까지 암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용인지방자치 역사에 가장 큰 오점
용인시가 8000억 원대를 배상한 용인경전철. 이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가장 큰 행정소송 패소 사건일지도 모른다. 시는 패소 후 소송비용만 100억원 대를 또 지급했다. 최악의 행정파탄 사례라는 평가다. 이때도 시의회의 감시와 견제의 역할은 없었다. 잘못된 협치만 있었을 뿐. 주민소송단이 꾸려져 7년 만에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냈으나 8000억 원 대의 배상금 판결(패소)을 자초한 진짜 주범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최종 결재권자인 단체장의 책임과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 부분에 면죄부를 준 꼴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법적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다.
#지방의회, 자중지란 여전....“차라리 없애”
지방자치 파행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의회의 가장 큰 역할은 예산심의다. 그런데 예산 심의과정에서 집행부가 아닌 시의원들간의 다툼이 벌어졌다. 지난해 말, 시의회에서는 2021년 본예산 심의과정에서 처인구 시의원 A씨가 서부공원관리과에 편성된 고기근린공원 재정비 예산삭감을 추진했다. 고기근린공원 관련 예산이 이미 용인도시공사로 위탁돼 추진 중이고, 심지어 본예산 안에도 공원조성과와 서부공원관리과에 중복 편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지구 시의원 B씨가 처인구에 편성된 도로 관련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나서며 논란이 촉발됐다. B의원은 A의원이 서부공원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 자신도 처인구 예산삭감을 하겠다며 대치했고, 결국 처인구청장과 관련 부서 공직자들이 A의원을 설득해 예산삭감을 막는 촌극을 연출했다. 시의원의 지역이기주의로 야기된 보복 예산심의 사례다.
#의장단 선거와 정당공천제 논란
지방자치제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는 ‘정당공천제’와 ‘의장단 선거’ 방식이다. 지방의회는 여야 당 대표까지 있는 작은 국회를 표방 중이다. 주요 사안마다 개개인의 판단과 소신보다는 당론이 좌지우지하는 격이다. 공천제이다보니 공천권자 눈치를 안볼수도 없고, 공천권자 역시 자신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이미 이때부터 자질론과 인물론은 물건너간 셈이다.
전직 시의장 A씨는 “특히 4년 임기 중 두 번 실시되는 의장단 선거는 다수당이나 다선 우선 원칙없이 교황선출 방식을 표방해 선거 과정의 잡음과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밝히고 “지방자치 초반에도 노골적인 금품‧ 향응 제공이 극성을 부렸던 기억이 있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방의회를 견제할 전문 기구가 없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지방자치의 본령은 협치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지방자치를 이끄는 인사들이 지방자치 일꾼이 아닌 복지부동과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직장인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