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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유산 산책

일제 수탈의 상징 ‘수여선’ 희미한 흔적만 남아

용인지역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진다(下)

1974년 일본인이 찍은 사진으로 멱조현터널 북측(동백지구방향) 입구사진.

            

멱조현터널 북쪽 입구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진.(정양화 교장 촬영)

 

            멱조현터널 정상부 화운사 표석 지하에 터널이 매몰돼 있다.

           

용인중앙시장 도시락카페 내에 설치된 수여선 지나던 길을 알리는 안내판

          

 

풍림아파트 뒷편에 남아있는 수여선 교각 일부   

화분뒤에 숨어있는 수여선 지나던 길 안내 표지판

        

광복 후 한때 낭만을 실어나르던 수여선의 추억

 

수원~용인~이천~여주 73.4㎞구간 ‘꼬마열차’
현재 협궤철도용 터널, 덕곡·멱조현터널이 유일
동쪽 입구 발굴 ‘수여선 철도 기념관’ 재탄생 필요

 

[용인신문] 수탈의 도구였던 수여선(수려선)은 광복 후 한때 낭만적 추억이 깃들어 있기도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된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문화유산이다.

 

용인은 협궤열차 수여선이 통과하던 지역이었다. 수원을 출발해서 용인, 이천을 거쳐 여주에 도착하는 총 연장  73.4㎞의 꼬마열차로 불리던 수여선은 1972년 4월 1일 폐선 됐다.

 

광복 이후 국유화 돼 운영되다가 교통의 발달로 사라져버린 수여선.

 

그러나 현재 국내 철도터널 가운데 협궤철도용 터널로는 수여선의 덕곡터널(기흥구 태광CC 근처)과 멱조현터널이 유일하게 남아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으며 그 근처에 수여선 터널 안내판이라도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

 

정양화 용인문화원 문화학교 교장에 따르면 "현재 두개의 터널은 지하에 매몰돼 있어 원형을 볼 수 없지만 시멘트콘크리트로 건설됐기 때문에 구조는 완전하게 남아있을 것으로 여겨진다"며 "멱조현 터널 동쪽 입구를 발굴해 터널 내부를 정리하고 환기 및 채광시설을 갖춰 내부에 수여선 철도 기념관을 꾸민다면 일제의 수탈로 인한 질곡의 역사와 광복 이후 서민의 발로 용인 일대에 기여한 수여선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가동 멱조현 마을에도 수여선 철교 교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더구나 시멘트로 만들어진 튼튼한 교대 위에 찢겨져 나간 철로의 철 조각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다.

 

한 귀퉁이나마 당시의 원형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행스러운 일임에도 시 당국은 전혀 관심 밖이다. 이나마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지 모른다. 사실 2018년 정양화 교장이 촬영했던 교각 흔적에는 쇠로된 철로가 길게 남아있었음이 확인되나, 현재는 찢겨나간 끄트머리만 남아있다. 수여선 철교 교대 옆에는 쓰레기가 쌓여있고 일반 시민들은 그곳이 수여선이 지나던 곳이었음을 알 길이 없다.

 

뿐만 아니라 용인시가 수여선이 지나던 자리였음을 표시해놨던 용인중앙시장 도시락카페 ‘머뭄’ 내 안내표지판조차 화분에 가려진 채 전혀 수여선과 관련한 어느 콘텐츠로도 활용되지 않고 있다.

 

용인에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져가는 근대문화유산이 여럿 있는 가운데 수여선의 흔적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협궤열차로서 1995년 사라진 수인선의 경우는 공원이나 박물관 등에 수인선을 둘러볼 수 있는 각종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수원시립박물관에도 협궤열차 한량을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수인선을 기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각 흔적 쓰레기더미와 함께 잊혀져

삼가동 풍림아파트 뒤편에는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수여선 흔적이 남아있다. 협궤열차의 교각과 찢겨져 나간 철로 조각의 원형 일부가 천만다행으로 남아있다. 시멘트 교각을 대하는 순간 일제강점기의 원형이 남아있다는 신기함과 놀라움, 당시를 오가던 협궤열차의 느낌이 확 살아난다. 그러나 이곳은 당연히 아무런 안내문도 없이 쓰레기더미와 함께 버려진 기억으로 잊혀져 있다. 100년 가까이 버텨내고 있는 흔적이건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다.

 

#술막다리 근처 수여선 표지판, 화분에 가려진 채 흐지부지

수여선에 대해 용인시에서 아예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술막다리 인근 용인중앙시장 도시락카페 ‘머뭄’을 개소할 때 카페 자리가 과거 수여선이 지나던 곳이라며 카페테리아 내부를 기차 분위기로 만들기도 했다. 당시 수여선 안내 표지판도 설치했으나 현재는 화분에 가려진 채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제는 카페 용도를 바꿔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 완주 인증처로 바꿀 계획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에 대한 인식도 오락가락 바뀌는 현실이 안타깝다.

 

#수여선 양곡 수탈 목적으로 건설

수여선은 1930년 12월 1일 조선경동철조주식회사가 민간철도로 개통했다.

 

현재 42번 국도와 노선이 일부 겹치고 실제 42번 국도의 일부 구간은 철로 노반위에 지어졌다. 경전철인 에버라인 역시 수여선의 노선을 따라 용인시 어정지역과 처인구 지역에 재현된 듯 하다.

 

협궤는 표준궤인 1435mm보다 폭이 좁고 협소하다. 762mm이니 현재 열차 폭의 절반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버스보다도 작은 크기의 열차다. 한때 낭만을 실어나르던 열차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본래는 일제가 일제강점기에 부설한 철도로 여객 운송 목적이 아니라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수여선은 수원에서 인천을 잇는 수인선과 연계 운영하면서 주로 여주, 이천에서 수탈한 양질의 쌀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고 해산물을 내륙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양질의 쌀로 유명한 여주, 이천 지역의 좋은 쌀을 공출하기 위해 부설된 철도다.

 

1971년 12월 영동고속도로의 신갈 여주 구간이 개통되고 주변의 도로 교통이 발달하자 이용객과 화물 이용객이 줄어 1972년 4월 1일 폐선 됐다. 폐선 당시 일부 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수여선 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수여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반대했고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에 표준궤로 넓히고 구둔역으로 연장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교통정책의 방향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수여선 역

용인의 수여선 역 위치는 어정, 역말(간이역, 현 행정타운 부근), 용인역, 심평(간이역), 양지,제일(간이역) 등이었다. 수여선은 아직 곳곳에서 기억된다. 풍림아파트 뒷편 교각 근처에도 또 다른 교각이 남아 있고, 용인중학교 맞은편 LG슈퍼 앞길 수여길이라는 지명도 옛 수여선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