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자퇴조왈상인호불문마(廐焚子退朝曰傷人乎不問馬). - 향당편(鄕黨篇) 12장(章)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朝廷)에서 물러나와 물으신다. 사람이 상했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는 것이 기존 해석이다. 이 문장은 공자의 토종 왕도정치 철학임에 틀림없지만, 방점의 위치에 따라서 법치의 패도정치로 나뉠 수 있는 화약고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하여 공자께서 찬(纂)한 것을 후학 주자는 집(集)해서 주(註)로 역(譯)을 했다.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책 주자집주가 그것이다. 우암은 주모(朱謀) 주자‧ 주희께서 이미 다 풀어 놓았거늘 후학이 감히 첨언(添言)한다는 것은 불경을 넘어 사문난적이라고 말한 이유가 왕도와 패도 때문이다. 이 사문난적의 중심에 그의 30년 지기 백호 윤휴가 있다. 우암은 사계의 문도다. 사계는 어린 시절 율곡을 거쳐 귀봉 송익필에게 글을 읽은 뒤 다시 율곡에게서 글을 읽는 재가문도(在家門徒)이다. 그 재가문도의 재가제자가 백호 윤휴와 우암 송시열이다. 백호 윤휴와 우암 송시열이 갈라서게 된 문장이 분마자퇴(廐焚子退)다. 백호는 상인호불(傷人乎不) 에서 방점을 찍는다. 상인호불(傷人乎不) / 문마(問馬)다
섭공(葉公)이 우리 마을에 정직한 아들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양(羊)을 훔치자 아들이 아버지를 관아에 고발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우리 마을의 정직한 자는 좀 다르지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주니, 정직함이 이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라고 답했다. (葉公 語孔子曰 吾黨 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論語子路篇 18文章) 어찌 보면 섭공의 말이 옳다. 하지만 국가가 여기까지 관여한다면 숨 막히는 세상 정도가 아니라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라는 게 공자의 생각이다. 공자의 말이든 섭공의 말이든 어느 것을 선택하든 둘 다 위험한건 매 일반이다. 그만큼 이 문장이 갖는 위험성이 크다는 말이다. 인류 역대 지도자중 그 누구도 이 문장을 활용한 지도자는 없었다. 사문화 된 문장을 통치수단으로까지 끌어올려 되살린 사람이 근대 인류사에 둘이 있는데 모택동과 김일성이다. 이 문장은 그들이 자신의 왕국을 정당화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문장이다. 김일성과 모택동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민(民)이 군도(群徒)로 세력화되는 것이고 군도가 민란(民亂)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만하는 사람은 돈 벌 틈이 없다. 사석에서 빌게이츠가 웃자고 했다는 말이라는데 실제로는 앞 세대인 록펠러가 한 말이라 한다. 애쓴다고 해서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비록 저자거리의 허드렛일이나 말 몰아가는 일도 하겠지만 애를 써도 부자가 되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 (子曰 富而可求也 雖孰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논어술이 7-11문장). 인생 포기 선언문과도 같은 이 말은 놀랍게도 성인 공자의 말이다. 돈 많은 소인배는 있어도 돈 없는 대인 배는 없다. 이 말은 돈이 없으면 성인도 소인배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넉넉해야 영욕(榮辱)을 안다. 예는 돈이 있으면 생기고 돈이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돈은 벌고 봐야한다고 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워 돈 벌고, 돈이 약간 있는 자는 머리를 써서 돈을 더 벌고, 이미 돈이 많은 사람은 시류를 타서 이익을 남긴다(是以無財作力 少有鬪殼智 旣饒爭時 此其大經也). 이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그의 책 소비의 사회1970에서 말했다. 갑부
노(魯)나라 빅 쓰리는 중손씨(仲孫氏) 훗날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며 계손씨의 세력이 가장 컸다. 어려서부터 공자는 먹고 살기위해 계씨 집안의 창고지기가 된다. 생각은 가(家)보다 국(國)이지만 현실은 계무자(季武子), 계평자(季平子), 계환자(季桓子), 계강자(季康子), 4대에 걸쳐서 밥벌이 때문에 인연을 유지한다. 계환자(季桓子)와 소원해져서 위나라로 망명했지만 그의 아들 계강자(季康子)가 다시 국정 고문으로 모셔온다. 공자의 나이 68세다. 젊은 실권자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묻는다. 선생님, 저는 나쁜 놈들을 다 죽여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싶습니다(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공자 왈. 정치를 해야지 어찌 살인을 하려는가, 그대가 먼저 착하면 백성들이 착해질 것이다(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 善矣). 군자가 바람이라면 소인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 草上之風 必偃).顔淵篇 19章 이에 시인 김수영은 독특한 새김을 한다. 그의 시풀이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시인 김수영은
태갑 편에 왈.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서경에 나오는 말을 맹자가 써먹는다. (太甲曰 天作孼 猶可違 自作孼 不可活 此之謂也 태갑왈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 차지위야) 공자는 인간의 내면적 규범을 인(仁)이라 하고, 외면적 규범을 예(禮)라 했다. 속으로 사랑은 하되 겉으로는 예를 지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원인이 인간의 윤리 도덕이 타락이므로 내면적 규범인 인(仁)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한다. 이를 맹자는 내면적 규범인 인(仁)이란 것이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에 있던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성선설(性善說)이 그것이다. 여기에 시비를 건 게 순자다.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니 모든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기르는 방법은 예를 따르는 것보다 더 나은 길은 없고, 스승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좋아하는 것을 한 결 같이 하는 것보다 더 신통한 것은 없다(養心 凡治氣養心之術 莫經由禮 莫要得師 莫神一好 양심 범치기양심지술 막경유예 막요득사 막신일호)며 외면적 규범인 예(禮)를 통해 내면적 규범인 인(仁)을 정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악설(性惡說)이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염치없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충청도 땅에선 떠나야 한다. 싸가지 없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라도 땅에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수 없다. 저런 저. 저. 후랴덜 이 말속에는 너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는 아웃이야를 내함 한다. 위의 말은 관자의 사유에서 비롯됐다 한다. 물론 설(說)이다. 관자 책 권지일 목민(牧民) 관자의 목민사상은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를 말하고, 다산의 목민사상은 고을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말함편에 창고가 실해야 예와 분수를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과 욕을 안다(倉庫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춘추 제나라 명재상 관자(管子 BC723-BC645)는 예(禮)의(義)염(廉)치(恥). 사유(四維)를 말한다. 유(維)는 벼리, 즉 절대로 끊어지면 안 되는 끈이다. 끈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끈 두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끈 세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히고, 끈 네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기울어진 것은 바로잡을 수 있다. 위태한 것도 안정시킬 수 있다. 뒤집어져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 끝이다. (國有四維 一維絶則傾 二維絶則危 三維絶則覆 四維絶則滅 傾 可正也 危. 可安也 覆. 可起也 滅. 不可覆錯也.
대의 민주주의는 투표로 말한다. 이정희 의원은 아까운 의정활동 시간들을 박근혜 대통령을 기스내는 걸로 낭비를 하는 것으로 비춰져 참 안타깝다. 지난 대선 TV토론 때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며 매섭게 쏘아붙이다 결국 역풍 한방에 훅갔던 순간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물론 이정희 의원이 먹고살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십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 오버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 열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를 올바로 할 수 있도록 압박을 한다면 좋으련만. 박근혜 대통령은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통일대박론이고, 둘째는 대통령 선거당시 내세웠던 공약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대통령 당선에 관련된 부정선거에 관한 시비다. 여기서 대통령 선거당시 공약들과 부정선거 시비는 제1수권 야당인 민주당 몫으로 남겨두고, 이정희 의원 이하 그 당은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볼 때, 성격이 약간은 다르니까 차라리 북한을 압박(?)하는 쪽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노회한 정치적 수완이 있어야하는데 아쉽게도 이정희 의원 측에는 그
천하를 통일한 월왕 구천(재위 BC497-BC465)은 범려에게 나라를 둘로 나누어서 다스리자 하니 범려는 화들짝 놀라며 그날로 야반도주 한다. 일설에는 서시를 데리고 도망했다고 하는데 그건 드라마적 요소고 사마천의 사기는 그렇지 않다. 제나라로 도망을 가서 도(陶)라는 작은 고을에서 금융업을 해서 재물을 많이 모은다. 에는 도망가기 직전 함께 구천을 도와 부차를 쳤던 국무총리격인 대부 문종에게 두 문장의 편지를 한다. 더 이상 잡을 새가 없으니 좋은 활은 활집에 들어가고(飛鳥盡 良弓藏)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니 사냥개는 삶아먹는다(狡兎死走狗烹). 이용가치가 없자 버림받는다는 뜻이다. 훗날 한신은(?~BC196년)은 교토사 주구팽 비조진 양국장(狡兎死 走狗烹. 飛鳥盡 良弓藏) 여기다 적국파 모신망(敵國破 謀臣亡)을 덧붙여 적국을 격파하니 모신이 죽는 구나했다. 구천은 어떤 위인이냐. 장경오훼(長頸烏喙)다. “목이 길고 까마귀 입이라 고통은 함께 하지만 기쁨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알아서 처신하시오”하고 튄다. 아뿔사. 정신 차린 문종은 병을 칭하고 집에 칩거를 한다. 구천이 병문안을 와서 왈, “귀공이 나에게 원수를 갚는데 일곱 가지 계책 중에서 세 가
1959년 10월 후안카를로스코페스 무도단과 함께 푸에르토리코 순회공연 중이던 피아졸라는 아버지 빈센티 노니노가 죽었다는 비보를 뉴욕에서 듣는다. 다녀올 여비가 없었던 가난한 작곡가 피아졸라는 눈물로 「안녕히 가십시오. 아버지」라는 뜻의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 를 작곡해서 아버지 영전에 바친다. 그로부터 54년 후 2014년 2월 소치올림픽 빙판위에 요정 김연아가 이곡에 맞춰 춤을 춘다. 온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이 요정의 일거수일투족에 넋이 나간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시각에 한 여자가 파랑색 매직으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그리고 생에 마지막 글을 쓴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70만원이 담긴 하얀 봉투를 놔둔 채 2월 26일 저녁 8시 30분경 숨진 채 발견됐다. 우리가 이 죽음에 대하여 아파하며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우리도 이렇게 죽어갈지 모른다는 암시성 때문이다. 문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하는데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임금으로 존경을 받고 백성은 편안히 살게 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공이 말한다. 백성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것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7대손 토정. 아버지 이치(李穉1477-1530)는 1504년에 일어난 갑자사회에 종조부(從祖父) 이파가 연루되면서 진도로 유배를 갔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해금, 이듬해 사마시 합격 후 의금부도사와 수원판관 중 과로사 한다. 그의 어머니 또한 광산김문의 여식으로 토정 나이 16세 때 세상을 뜬다. 토정의 큰형 이지번의 아들 북인영수 아계 이산해가 장조카이며 한음 이덕형은 아계의 사위다. 아계는 조선제일의 노비출신 학자 13경을 토씨하나 안 빠뜨리고 외운다는 구봉 송익필의 교우다. 토정의 외조부 만취당 김맹권은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 폐위 후 왕위 찬탈하자 고향인 보령으로 낙향한 후 세상과 등진다. 그의 아들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극성(1474-1540)이다. 토정은 훗날 화담 서경덕의 문도가 되며 동인의 영수 초당 허엽과 서인으로 영의정에 오른 어부사의 시인 사암 박순이 그의 동문이다.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더불어 조선 삼대 기인인 방외지사(方外志士)로 불린다. 선조 6년 1573년 6월 조목(趙穆) 정인홍(鄭仁弘) 최영경(崔永慶) 김천일(金千鎰)과 더불어 행실이 가장 뛰어나다는 탁행지사
잘나면 잘난 대로 쓰고, 못나면 못난 대로 쓰면 된다. 왜냐, 잘났으면 그 잘남으로 공을 세우려 할 것이고, 못났으면 못난 대로 충성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개성을 살려 사람을 부려라(使智使勇 使貪使愚)라는 뜻의 육도삼략(六韜三略)중 삼략(三略)의 중도(中略)편에 나오는 말이다. 태공망 여상은 이를 용인술(用人術)이라 한다. 선진 편에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에 누가 더 훌륭합니까? 하니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과유불급을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로 알고 있으나 이는 오역이다. 과유불급은 넘침과 모자람은 같다. 즉, 공자는 중용(中庸)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나중에 자공이 자신을 자장과 비교한 사실을 알고, 불쾌해진 자하는 스승인 공자께 묻는데 이 물음은 논어가 아닌 열자(列子)에 기록 된다. 안회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공자 왈, 안회의 인(仁)하는 마음은 나보다 한수 위다. 자공의 사람 됨됨이는 어떠합니까? 자공의 말 재주는 천하제일이다. 자로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자로의 용감무쌍함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럼 자장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나는 자장의 중후(重厚)함에 훨씬 못 미친다. 그렇다
역산(歷山)의 농부들은 밭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매일 싸운다. 순(舜)이 역산에 가서 경작을 하자 1년 만에 역산의 농부들은 서로 양보를 한다. 뇌택의 어부들은 어장을 놓고 서로 싸운다. 순(舜)이 뇌택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자 1년 만에 서로 양보를 한다. 하빈(河濱황하 강변의 도기(陶器)는 찌그러졌고 잘 깨진다. 순이 하빈에 가서 도기를 만들자 1년 만에 하빈의 도기는 찌그러지지도 않고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순이 사는 곳은 1년 만에 부락이 형성되고, 2년 만에 마을을 이루며 3년이 되자 도시가 된다. 공자는 이게 바로 성인의 덕화라며 칭송하는데 한비자는 15권 34장 난(難) 1편에서 고개를 젓는다. 그깟 하나를 고치는데 무슨 1년씩. 3년이 걸려서야 겨우 세 가지를 고쳤으니 어느 하 세월에. 그렇다면 세상은 구석구석에 나쁜 것이 산처럼 쌓였는데 이 모든 나쁜 것을 고치려면 도대체 순의 나이가 얼마나 길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기준을 정해서 좋은 일을 하면 상을 주고 기준에 맞지 않는 좋지 않을 일을 하면 벌을 줘라. 이런 법이 아침에 발표되면 저녁쯤이면 고쳐지고. 저녁에 발표되면 다음날 아침쯤이면 나쁜 짓은 사라진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