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진나라 시황제의 몰락과 함께 천하 통일굿 진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장본인 두 사람을 들라면 아마도 재상을 지낸 이사와 환관 조고를 비껴갈 순 없으리라. 이사는 한비와 더불어 순자 문하에서 공부한 명실상부한 법가다. 환관 조고 또한 법가다.
조고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환관만이 갖는 정보력(?)이라든가 환경과 처지가 아닌 통어옥법通於獄法이라는 법을 위반한 자는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옥법獄法에 따라서 형벌을 가한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듯한 명분임에 분명한데 그럼에도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후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먼저 바르지 못하다는 데 있다.
저한테 유리하도록 법을 끌어다 쓴 악행 때문이다. 그것이 고사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저 유명한 ‘지록위마持鹿爲馬’의 고사이다. 세상은 이를 법비라 불렀다. 여기서 비는 도적놈이라는 의미가 있다. 쉽게 말해서 법을 아는 도적놈이라는 말이다. 본디 백성은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들 살아간다. 그런데 꼭 저런 것들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니 백성들의 삶이 더 꼬이게 되는 것이리라.
자신과 그를 둘러싼, 더러는 바르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잡아다 벌을 준다면 참 머쓱한 일임이 분명하리라. 사람은 바른길을 걷다 보면 걷는 길에 여백과 더불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는데 이런 자들은 대부분 삶의 여유가 없다. 칼자루를 잡았다고 해서 천지가 제 세상 인양 그것을 함부로 내둘리다가는 되려 자신을 베는 수가 있다. 그래서 권력을 쥔 자는 우선은 먼저 자신이 바르고, 그다음에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옳다. 이에 대한 백성의 응대는 권력을 잡은 자가 부당한 권력을 휘두른다면 거기에는 저항으로 답한다.
일반 범부의 삶에 있어서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 대다수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꼴 보기 싫은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렇듯 권력을 잡은 자들이 권력에 합당치 못한 권력 행사나 막가파식 행동을 한다면 백성이 할 수 있는 일 이란 몹쓸 자들을 끌어내리는 일이 전부이리라. 여기까지가 기원전 350년경 맹자께서 위나라 3대 군주 양혜왕과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라 전한다. 어느 시대나 백성들이 힘든 것은 깜도 안되는 것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