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수의 매만지는 모습
새롭게 태어나는 ‘나비’로 묘사
용인신문 | 신경숙 시인이 시집 ‘다른 계절에 만나요’를 별꽃시06으로 펴냈다.
‘다른 계절에 만나요’는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에게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계절로의 옮김이라는 안도와 위안을 주는 시집이다. 가족의 죽음을 겪은 시인이 깊은 사색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신 시인의 시를 쓰는 작업은 일상의 껍질로부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업 끝에 드러나는 죽음의 본질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시인은 구순의 시어머니가 수의를 만들어 놓고 매만지는 모습에서 나비를 본다. 시어머니에게 머지않아 닥쳐올 죽음에서 마치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태어나듯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본다.
“...//윤달에 꺼내본다 반닫이 속 수의를 날개처럼 펼치는/구순 넘으신 시어머니, 얇은 삼베옷을 채곡채곡 넣어/둔다...// 백 년이 다 된 가벼운 몸에서 비늘이 묻어난다 오래/전에 농 안으로 들어간 나비가 웃고 있다”(시 ‘날아오르다’ 중)
차성환 한양대 겸임교수(시인)는 작품 해설에서 “죽음 이후에도 내생이 있다면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화하는 순간과 가깝지 않을까. 죽음은 땅으로 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지상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온몸을 던지는 것”이라며 “죽음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나오듯 죽음을 통과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차 교수는 “시 ‘봄 냄새를 열어본다’에서 ‘온몸을 밀어 계절을 건너온 벌레의 주름’이라는 시인의 표현은 지금의 계절을 넘어 또 다른 계절을 향해가는 존재의 운동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차 교수는 “신경숙 시인이 가족의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는 가족들에 대한 내밀한 기억과 흔적을 붙들어 시에 부려놓는 것은 사랑하는 죽은 이를 더 잘 기억하고 오래 가슴에 묻기 위함이다. 지금과는 다른 계절에서의 재회를 꿈꾸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음의 얼룩이 흐릿해져요/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기억처럼/ 온종일 내 몸을 갉아먹고 있어요 방문을/열면 마당의 나뭇가지가 눈을 떠요/ 시간의 주름이 그 나무에 겹겹이 여위어 있어도 봄은/또 와서 꽃눈이 불거져 있어요/ 햇빛으로 쓸어내도 지워지지 않는/얼룩들이.../내가 완전하게 당신에게 전달되었다는 소식/우리 사이에 서로 다른 계절을 보내고//...//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계절이 있어요”(시 ‘다른 계절에 만나요’ 중)
신경숙 시인은 2002년 ‘지구문학’으로 등단, 시집 ‘비처럼 내리고 싶다’ ‘남자의 방’ 등이 있다. 제 17회 서울 시인상 수상, 2014년 수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현재 시나모 동인, 용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