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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든 백성… 길 잃은 군주와 정치

송우영(한학자)

 

용인신문 | 정치가 국민의 삶에 1도 도움이 안된다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도 없으리라. 물론 돈을 쟁여놓고 사는 사람들이야 ‘이대로’를 외치며 작금의 세상이 천국이겠지만 돈을 박스로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다수의 서민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옛날 고리짝 시절에 나라를 무려 50년간 다스린 임금이 있었다. 요 임금이 그다. 한번은 백성들이 어찌 사는가를 보고자 하여 민복으로 환복하고는 저잣거리를 지나는데 저만치 그늘 아래서 젊은이 한 무리가 작대기로 토닥토닥 땅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더란다. 노랫소리를 들어보니 잘 먹고 잘사는데 임금의 은혜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듣기에 따라서 험담 같기도 하고, 그러나 요임금은 똑똑한 임금인지라 그 노랫말의 의미를 금새 알아차렸다.

 

가장 훌륭한 정치는 백성이 임금이 누군지도 모를 만치 잘 먹고 잘살게 하는 정치다. 그렇게 흐뭇하니 그 자리를 지나 또 어느 만치 가니 늙은이들이 드러누운 채 손가락으로 배를 까딱까딱 두드려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해 뜨면 일어나고 해 떨어지면 쉬니 밭 갈고 우물 파서 물 마시니 임금이 누군들 내게 무슨 소용이랴. 이 또한 험담 같기도 한데 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또 어느 만치 가니까 작은 누옥이 분명한데 아이의 웃음소리가 멈추면 늙은이 웃음소리가 들리고 늙은이 웃음소리가 그치면 아이 웃음소리가 들리기를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요임금과 일행은 기쁘기가 매우 흡족했다.

 

나라 안 백성들이 젊은이들은 땅을 때리며 노래를 부르고, 늙은이들은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또 집마다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이런 게 태평성대 아니고 무엇이랴. 사실 백성이 정치에 신경 쓰기는 예나 지금이나 불가하다. 다른 게 있다면 옛날 그 시대에는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사니까 정치에 관심 둘 필요가 없었고, 지금은 국민들이 아등바등을 훨씬 넘어서는, 죽기 살기로 살아도 입에 풀칠이나 할까 말까 하는 지경에 이른 마당이니 한가롭게 정치 따위를 관심 둔다는 게 사치라는 것.

 

옛 현자들의 말을 빌면, 본래 정치란 것은 말한 것을 지키는 일이라 했다. 그래서 묵자는 제대로 된 지도자는 낭비가 없으며, 백성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명나라 시대에 태어나 청대를 살다간 청나라 학자 당견은 잠서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부라는 것은 백성의 집에 있어야 하나니 나라의 창고 안에 있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에 백성의 집은 텅 비어있는데 비록 나라의 창고에 재물이 쌓였기가 산을 이루고, 언덕을 이룬다 해도 실로 곤궁한 것이니, 이는 나라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그렇다. 백성이 살기가 힘들어지는 순간, 그 시대의 군주와 정치는 길을 잃은 것이다. 정치가 길을 잃었다는 것은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며, 이는 곧 국민은 도탄에 빠지게 됨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공자의 논어에 따르면 고래로 정치는 정당성이라는 불문율을 갖는데 곧 민심이 그것이라는 말이다. 논어위령공편 15-27문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미워해도 ‘정치인은 국민을’ 살펴봐야 하고, 사람들이 좋아해도 ‘정치인은 국민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요즘이야 대중의 힘이 커지다 보니 폭력도 권력이 되는 시대가 되어 대중의 힘은 착한 사람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는가 하면, 악인의 진면목을 놓치고 되려 선인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 행간에는 정치인의 잘못도 일정량 있다. 정치가 대중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이다. 국민들의 눈높이는 상책을 넘어서 이만치 높아 있는데 정치는 저만치 아래에서 중책도 아닌 하책을 논하고 있으니, 나라는 소란스럽고 국민은 곤궁하고 이쯤 되면 대중의 시선은 사나워질 수밖에 없는 거다.

 

율곡 이이는 임금이 백성을 등한시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재앙은 군주의 피부와 살을 아프게 하지 않고, 지진과 일식과 월식은 군주의 몸을 손상시키지 않으므로 해와 달과 별의 어긋남을 무시하고, 하늘의 노여움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임금은 백성을 대하기를 백성의 굶주림은 곧 임금의 굶주림이 되어야 하고 백성의 아픔은 곧 임금의 아픔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대통령도 정치인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면 너무 나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