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당나라 문장가 한유는 불평즉명을 말했다. 기울면 운다는 말로 인조 때 판서를 지낸 문인 상촌 신흠은 이를 이렇게 풀어낸다. 사물이 우는 것은 그 모두가 부득이함에서 말미암은 평평하지 않음이 있어서이니 곧 불평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고리짝 시절에나 있었던 이 말을 다시 되살려낸 단초를 제공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시다. 내용은 간단하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부적격 인사 논란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온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합일의 날이어야 할 8·15 광복절 행사가 사분오열의 행사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우리는 좌우로 나뉘어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던 시절도 있었다. 작금의 사태를 동시 비교하기는 좀 무리는 있다고 해도 유사한 상황인 것만은 부인 못 하리라. 이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하려 해도 임명권자에게 있다고 밖에 달리 생각이 안든다.
야당과 광복회 그리고 독립단체들이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광복절 행사는 그야말로 반쪽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정부가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온 국민이 염원하는 광복절 행사로서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단합의 장이 되어야 할 국가 최대의 기념일인 광복절 행사를 이렇게 쪼그라들게 한 이면에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이 한몫했으리라.
대한민국 국격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던가. 광복절은 곧 통합과 화합으로 열린 장이다. 그런데 이것을 분열과 나뉨의 닫힌 장이 되도록 이 지경까지 방치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도대체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는 그리도 인재가 없단 말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행사 전까지야 갑론을박이 자명하다 해도 막상 본 행사에는 모두가 참석해서 단합된 모습으로 치러야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친 호국영령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것이고, 또 이런 모습을 본 국민들은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이런 쿠데타 초기 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버젓이 반복되고 있는가.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친일이나 반일이나 이러한 거대 담론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자칫 국민 분열을 초래하기 딱 좋은 일들이다. 더군다나 우리 대한민국은 지구에서 유일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채 한민족 두 국가로 분열의 골이 깊어 진지 이미 오래이면서 서로의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러하거늘 옛날 성군 같으면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면 임금이 직접 찾아가서 읍소를 아끼지 아니한 채로 단합된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부덕의 소치를 만회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리하지 아니하셨다. 국민이 뽑아서 대통령이 된 만큼 국민에게 좀 잘 보이면 안 되나.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그냥 나 홀로 광복절 경축 행사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것이 어찌 대통령 혼자만의 생각이요, 대통령 혼자만의 일이요, 대통령 혼자만의 결단이겠는가.
옛날의 성군 중에 우임금이 있었다. 나라에 홍수가 자주 일어 백성들이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었으니 우임금이 맨발로 천하를 달려 나가며 흙과 돌을 날라다 제방을 세우고 둑을 수리하여 홍수를 억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천하 백성은 평안했으리라. 기록 말미에 이렇게 적기를 우임금이 백성을 돌아보느라 그의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가실 날이 없었고, 그의 양쪽 다리에는 진흙탕 속에서 일하느라 털이 자랄 날이 없었다.
임금의 일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국민이 나랏일 걱정하지 않고 제 할 일 다 하며 제 식구 잘 건사하며 살게 해주면 되는 거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일국의 대통령쯤 되셨으면 마음이 넓어야 한다. 좁은 생각으로 국정에 임한다면 거기에서 오는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기 십상이다. 정치는 생물이라 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반드시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라고 준 게 아니다. 당부하노니 국민 앞에서 긴장 좀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