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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실과 작별하지 않는다

박소현(방송작가)

 

용인신문 |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로 중학생들에게 논술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소설 속 ‘소년’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에게 잔인한 권력이 삼켜버린 ‘소년’의 죽음과 5·18 민주 항쟁을 어떤 역사로 기억해야 하는지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년이 온다’는 그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들이 소설의 내용이 끔찍하고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며 ‘소년이 온다’라는 책으로 논술 수업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절대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희생된 광주의 5월은 역사로 기억되어야 하지만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그 잔인한 역사를 가르치고 싶지 않은 모순된 역사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역사의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어른들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소년들과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 민주 항쟁의 의미를 나누고 싶었던 내 의지도 꺾이고 말았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나는 2005년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을 만났다. 그녀의 글은 편하지는 않았지만 강한 끌림이 있었고,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녀의 1994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붉은 닻’을 찾아서 읽었다.

 

역사의 큰 틀은 보여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 역사 속에는 누군가의 희생도 있고 어처구니없이 왜곡된 역사 속에 억울하게 묻혀버린 진실도 있다. 애써 한 꺼풀 벗겨내지 않으면 가려진 역사의 진실을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보여지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18 광주 민주 항쟁도 쿠데타로 왜곡되다가 민주 항쟁이라는 진실을 찾았다. 그 참혹했던 광주를 얼마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소설가 한강은 어린 시절 보았던 사진 속의 엄청난 잔인함을 기어이 한 권의 소설로 세상에 내놓았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종이책을 사기 위해 서점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인쇄소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출판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100만이던 독서 인구가 노벨문학상 효과로 300만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혹자는 사람들의 냄비 근성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비판도 잠시 멈추면 좋겠다. 대한민국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지금 그녀가 가장 마음을 주고 있다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억의 왜곡과 잊혀짐을 강요당하는 약자의 상처와 아픔을 그녀는 기어코 소설로 남겼다.

 

나는 그녀의 소설과 결코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