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나는 1983년에 입대하여 2018년에 전역한 대한민국 육군 원사다. 강원도 양구와 철원의 최전방부터 평택, 왜관, 원주, 용인을 거쳐 이천에서 마지막 군 복무를 마쳤다. 35년간 청춘을 바쳐 군문을 지킨 내가 왜 지금 이 글을 써야만 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2026년 가을, 과연 대한민국이 북한의 도발 앞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낼 수 있을지 깊은 회의와 울분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매설한 지뢰에 우리 장병들이 중상을 입었음에도 국방부 장관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며 주춤거렸고, 작전 지휘권을 쥔 합참마저 머뭇거렸다. 21사단과 6사단 최전방 철책을 지켰던 사람으로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무기력함이다. 더 기가 찬 것은 국회에서 나온 장관의 답변이었다. “저는 퇴역한 민간인이므로 군복을 입을 수 없습니다. 법률에 정해져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장관으로서 내놓을 최선의 답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단정한 짧은 머리를 유지하며, 북한의 도발이나 군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벽에 걸린 군복을 바라본다. 평생을 군에 몸담고 별을 달았던 지휘관 출신 장관이 군복의 진정한 무게와 의미를 모른다는 사실
용인신문 | ‘용인’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주변에 물어보곤 한다. 이전에는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으로 대표되는 도시였다면, 이제는 명실상부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로 새롭게 브랜딩되고 있다. 그렇다면 반도체라는 개념을 통해 용인의 관광 시스템을 새롭게 재구성해 보면 어떨까. 지난 얼마간 반도체의 구조와 공정, 그리고 각 음절을 용인 관광의 특성과 연결해 ‘반도체 관광’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고민해 보았다. 먼저 반도체의 핵심 공정 및 구조를 관광의 구성 요소와 매칭해 보았다. 모든 회로가 그려지는 기초판인 웨이퍼는 관광이 이루어지는 공간적 바탕인 용인시를 상징한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고 정교한 형태만 남기는 식각은 핵심 자원을, 포토 공정은 시각적 매력을 기록하는 사진명소나 미디어 관광과 맞닿아 있다. 신호를 제어하는 트랜지스터는 관광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교통·이동 거점 역할이고, 칩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연결하는 패키징은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는 숙박·환대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완성품의 비율을 뜻하는 수율은 관광객의 여행 만족도로 연결된다. 반도체의 종류별 구동 특성 역시 관광의 유형과 연결 가능하다. 전원이 꺼지면
용인신문 | 서역남북로(西域南北路)의 남로와 북로의 분기점에 위치하여 끊임없이 흉노와 한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위협과 약탈에 시달렸던 누란은 만년설과 빙하로 덮여 있는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타림강이 흘러드는 로프노르의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서(漢書)』 서역전에 “선선은 원래 누란이라 불렀다. 그곳은 장안에서 6100리, 양관에서 1600리 지점에 있다. 가구 수는 1570호, 인구는 1만 4100명, 병사는 2912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가 누란을 점령한 후,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량미를 자급하기 위해 대규모로 둔전을 해서 땅을 개간해 벼‧보리‧수수‧콩 같은 농작물을 심었다. 이 과정에서 타림강 중·상류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물억새와 갈대숲 사이로 물길을 내고 농업용수를 지나치게 많이 끌어다 썼다. 그 결과 하류에 있던 누란과 로프노르로 유입되는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로프노르 주변에 무성했던 호양목의 생육에도 문제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도시를 확장하고, 땔감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호양목을 함부로 베어 냈다. 게다가 한나라 군대가 요새와 주거지를 건설하느라 호양목들을 마구 베어냈다. 호양목은 수분을 머금어
용인신문 | 어둠이 짙게 깔린 처인구 원삼면 일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은 불야성을 이루며 용인의 역동적인 내일을 보여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적한 농촌이었던 이 도시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문명의 심장부로 상전벽해의 전환을 맞고 있다. 1000조 원 규모의 거대한 투자가 쏟아지는 ‘첨단의 빛’은 용인 시민 모두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역사적 쾌거다. 하지만 거대한 공장의 굴뚝과 화려한 스카이라인만으로 위대한 명품 도시가 완성될 수 있을까. 도시의 진정한 품격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 성장을 넘어, 그 땅에 깊숙이 뿌리내린 역사와 사람의 향기, 즉 문화예술의 결에서 우러나온다. 우리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며 용인이 품고 있는 웅장한 인문학적 정체성을 너무나 오래 잊고 지냈다. 그저 놀이공원이나 관광지로만 소비하기엔 아까운 도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용인을 한국 문학사를 수놓은 거성들이 영면한 거대한 ‘정신의 도서관’이라고 불러왔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鎮川 死居龍仁)’이란 옛말은 단순히 풍수지리적 명당을 넘어, 영원한 안식을 내어주는 용인 대지의 포용력을 뜻한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 현대소설의 거목 박완서, 근대문학의
용인신문 |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명제는 묵직하다. 여기에 조금 더 투박한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 “역사는 곧 살아있는 교훈”이라고 말이다. 역사는 박제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과거의 행간을 현재의 시선으로 메워 나가는 능동적인 작업이다. 기록이란 결국 인간이 쏟아낸 욕망의 흔적을 갈무리하는 과정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오늘의 이정표를 찾는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오나라 부차는 초심을 잃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자만하다가, 끝내 자신이 살려준 월나라 구천에게 멸망했다. 이미 조짐은 있었다. 부차의 아버지 합려는 그를 태자로 삼기 전, 아들을 가리켜 “우둔하고 착하지도 않다(愚而不善)”라고 평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부차는 자신을 태자로 만들고 국가에 헌신했던 오자서를 멀리하고, 달콤한 언변으로 현혹하는 백비를 중용했다. 초나라 망명객 출신 백비는 관계 관리에 탁월했다. 그는 오자서의 입지를 시기하여 모함했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부차 곁에는 전략가 손무도 있었으나, 부차는 구천을 제압한 것이 오로지 자기 능력이라 과신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오자서나 병법의 대가 손무보다 제 입맛에 맞는 백비를 곁에
용인신문 | 한때 영화관은 사랑을 배우는 곳이었다. 1980~90년대 스크린에는 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멜로물은 물론 액션 영화조차 사랑이 빠지면 성립되지 않았다. 첫사랑을 꿈꾸게 했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동경하게 했으며, 사랑 하나로 세상을 견디는 힘이 영화 속에 있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로망은 세속적인 성공보다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크린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와 드라마를 떠올려 보라. 마약, 도박, 사기, 조직 폭력, 복수…. 그 중심에는 예외 없이 살인이 있다.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시체 훼손 같은 잔혹범죄가 흥행 공식처럼 반복된다. 재미와 몰입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끔찍함에 대한 ‘익숙함’이다. 처음엔 눈을 돌렸던 장면이 두 번째엔 덜 충격적이고, 다섯 번째엔 아무 감정 없이 지나간다. 반복되는 자극에 적응하는 심리학적 ‘둔감화’ 현상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비극이 아닌 오락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우리 사회는 상상조차 어렵던 흉악범죄를 잇달아 겪었다. 도심 흉기 난동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남겼고, 안전지대라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