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싸가지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한 개인적 차이다. 그런데도 싸가지 없는 정치인은 꼴 보기 싫다. 유권자에게 자기의 의견을 설득해야 하는 처지에서 싸가지가 있고 없음은 중대한 문제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에게 호감 이미지는 중요하다. 사람이 보여주는 품격은 매력적이지만 도구는 아니다. 지향하려는 가치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싸가지라는 감정의 표현은 그 자체로 체현된 사상의 발로이다. 삶의 선상에서 내재화가 발현된 순수(?)한 감정이기에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싸가지는 인성과 품성‧태도를 뜻하지만, 고도로 정치화된 힘 있는 몸의 언어이다.무기(arms)의 어원은 팔이다. 팔을 뻗을 수 있는 거리까지가 방어의 범위에 들어간다. 그만큼의 반대편 길이는 상대방과의 거리가 된다. 몸의 확장은 영역싸움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힘이 작용하는 테두리를 사정(射程)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수의 국민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겠지만, 극소수의 세력들에게 ‘준비된 계엄령’이었다. ‘권력의 몸통’이 획책한 12‧3 내란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하는 것처럼 권력의 몸통에 기생하는 몸들이 전하는 미디어로 인해 내란의 목적은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됐다.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를 보면 미디어는 ‘몸의 확장’이라고 정의했다. 다른 말로 ‘인간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늦은 밤에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한 것은 몸을 쓰고자 한 명백한 증거이다. 헌법 제77조 5항에 의거하면 계엄 해제 요구할 수 있는 기관은 국회뿐이어서 아무리 계엄 상태여도 국회 기능을 막는 것도 불법이다. 또한 계엄법 제13조에 따라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원을 체포 또는 잡아 가둘 수 없는데도, 군인들은 무력을 사용하려고 국회에 들어온 것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황정민)가 악인에게 묻는다. “그냥 미안하다 한마디면 될 것을 왜 일을 그렇게 크게 벌여?” 영화를 보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 그 정도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선을 자꾸만 넘는 걸까. 의문에 대한 답은 재벌 2세 조태오(유아인)가 골프채로 강아지를 죽이는 장면에서 풀렸다. 그의 잔인성은 싸가지를 넘어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다. 그는 필요 이상의 폭력과 공포를 사용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영화보다 더 비극적인 표본으로 등장한 인물인 윤석열. 그에게 주변의 모든 것은, 즉 세상의 기능(군인‧경찰‧검찰‧국정원)은 자기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무기(arms)일 뿐이다. 따라서 타인의 비극과 아픔은 하찮은 존재이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악(惡)이 판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차피 복수가 불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악인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가끔 ‘미안하다’를 통해 소명의 기회를 부여받고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그런 후에는 더 교활한 방법을 통해 다수의 선(善)을 분열시킨다.선량한 다수의 분노 출발이 억울함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약자의 억울함이 교양 없음과 피해의식이라고 떠들어대던 언론은 ‘이제는 화합, 불안감 극복’과 같은 말들을 끄집어낸다. 그런 후에는, ‘흥분과 분노’는 행패요. 포용과 용서와 너그러움은 품격이라고 적는다. 사족, 신종 ‘소시오패스’가 출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