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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40년 가까이 용인에서 체육 꿈나무를 육성하고 용인의 생활체육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이바지한 그녀를 만나 지나간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 60년대 말 용인으로 부임
“아이를 낳은 뒤 1969년부터 용인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했어요.”
신의자 교사는 지난 1967년 이천양정여자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 고향인 포항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중 아이를 가져 휴식기간을 갖게 됐다.
첫 출산을 한 뒤 그녀는 바로 용인여자중학교(현 용인중학교) 체육교사로 발령을 받았고, 그때가 1969년이다.
“그 당시 용인은 메주고개길 하나 없는 오지였어요. 그리고 옹진 다음으로 용인으로 불릴 만큼 체육의 불모지였지요.”
서울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배구를 전공하고 본격적으로 체육교사로 활동하게 된 곳이 용인인 신 교사는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체육이 생활화되지 않았고 체육이라는 것 자체가 용인에서는 보기 힘들었다고 설명한다.
■ 이제는 생활체육이 자리잡아야
침체됐던 용인에 체육의 새바람을 불러 왔던 신 교사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70년대 중반 용인 최초의 ‘어머니 배구단’과 함께 용인의 자랑인 백암씨름부까지 창단했다.
그녀는 45세가 될 때까지 지역의 어머니들과 함께 감독겸 배구선수생활을 하며 전성기때는 10년간 경기도 A급 배구심판을 맡아보기도 했다.
또한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씨름선수들을 배출한 그녀도 이제는 “지·덕·체가 하나의 교육 목적이 돼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체육이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70~80정도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용인시실내체육관에서 농구경기를 보며 한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서울에서 용인까지 오게 됐다’고 하더군요.”
신 교사도 이제는 최고가 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즐기고 찾을 수 있는 체육이 되길 바라고 있다.
■ 기숙사 사감…새로운 도전
그녀가 바라고 꿈꾸던 것들이 40여 년 만에 이뤄졌다.
신 교사는 “저는 오래전부터 ‘체육관이 있는 학교’, ‘급식하는 학교’, ‘운동장이 우레탄이나 잔디로 만들어진 학교’를 그려왔다”며 “교직생활에 몸담고 있던 40여 년의 기간동안 이것들이 거의 실현됐다”고 좋아한다.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 다니는 것이 좋아 40여 년을 평교사로 몸담아 왔던 신의자 선생님. 이제는 용인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사감으로 근무할 계획을 갖고 지금까지 축적했던 에너지를 다시 한번 발산하려 한다.
여전히 아침 8시만 되면 집에서 나와야 하는 그녀의 습관 때문인지 63세인 그녀의 나이가 무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