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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계

시와풍경사이4/| 감동이 있는 시 감상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 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했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는 일상어로부터 너무 멀리 가 있는, 그리하여 소통거부의 시세계를 보여주는 미래파 시인이다. 그의 다른 시편들은 이미지로 읽어야 되지만 <외계>는 양팔이 없는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이다. 그의 시편 중에 드물게 서사가 보이고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어서 소통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만 그리는 화가라면 그의 그림을 해독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림이 되지 않아 기어 올라간 절벽은 절망하는 화가의 심리적 상황일 것이지만 이 세상 어떤 화가도 갖지 못한 색 하나를 갖기 위해 자신의 눈 속으로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수없이 내려 보내는 그가 과연 그 색을 갖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그린 수많은 바람들은 바람이 아니라 그가 어머니 자궁 속에 두고 태어난 자신의 두 손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