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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시와풍경사이 | 감동이 있는 시 감상-⑪

이 성 복

경남 충무나 고성 일대에서는 파리를 ‘포리’라 한다 ‘포리’, 그러고 보면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초겨울 아파트 거실에 들어온 파리는 쫓아도 날아가지 않고, 날아도 이삼십 센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예의 반수면 상태에 빠져든다 ‘포리’,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한사코 택시를 타지 않으신다 마늘이나 곶감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그보다 더 무거운 사과 궤짝을 들고 버스 두 번 갈아타고 고층 아파트 아들 집을 찾으신다 때가 꼬지레한 바바리에 허리 굽은 노인은 예전에 라면이나 풀빵으로 끼니 때우며 자식 공부를 시켰지만, 취미라고는 별것 아닌 일에 벌컥벌컥 화내는 것이다 땅 한 뙈기 없는 집안의 삼대 독자, 백발의 아버지는 이제 할머니 제사 때도 목놓아 통곡하는 일이 없다 헛도는 병마개처럼 꺽꺽거리는 헛기침이 추진 울음을 대신 할 뿐, 요즘 아버지는 누가 핀잔해도 말씀이 없다 ‘포리’, 지난 번 묘사 때 할머니 산소 찾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힘에 부쳐 여러 번 숨을 몰아쉬다가 시동 꺼진 중고차처럼 멈춰 섰다 아내는 등 뒤에서 아버지를 밀어드렸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또 쉬고 얼마나 올랐을까 산중턱 바윗돌에 앉아 가쁜 숨 몰아쉬는 아버지의 뺨에, 거기까지 따라온 파리가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이성복 시인의 가족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편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는 파리의 모티브를 통해서 늙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산문에 가까워 산문과 운문의 위태로운 경계에 서 있는 <파리도.....>는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반수면 상태에 빠져드는 ‘포리’의 병치를 통해 생노병사의 축약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벌컥벌컥 화를 내는 일이 취미였던, 그러나 화를 낼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가고 누가 핀잔을 주어도 화는 커녕 말을 하지 않게 된 아버지는 모든 권력을 상실한 늙고 힘 잃은 초라하고 왜소한 몸이다. 몸의 슬픔이다. 이 길은 누구나 가는 길이어서 끔찍한 실존의 길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