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명의 피면 인간이 된다? 인간이 될 요량으로 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의 사람 피를 빨아 먹은 모기는 부하모기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두루 다니며 사람을 찾다가 평릉현 양지 말 계곡에서 목욕하는 양홍이란 청년을 본다.
쾌재를 부르며 피를 빨아먹으려고 덤비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몸에 상처하나 없는 것이다. 남자의 몸이 이렇게도 깨끗할 수 있단 말인가. 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의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는 차마 깨끗한 남자의 몸에 상처를 줄 수가 없어 발길을 돌리면서 "오늘 이후로 모든 모기들은 평릉현 양지 말엔 들어오지 마라" 명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그 땅엔 모기가 없다 한다.
그런데 되돌아가는 길에 평릉현 음지 말 쯤 이르자 사람의 피가 고픈 모기들은 닥치는 대로 피를 빨아먹었다. 음지 말엔 맘씨고운 처자 맹씨녀가 살았는데 모기들이 부모님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안쓰러워 모기를 쫒을 요량으로 부모님 방에 먼저 들어가 매일 밤마다 모기들에게 피를 빨려주고 나온다. 배가 부른 모기들은 부모가 방에 들어와도 더 이상 피를 빨아먹지 않아 부모의 몸은 멀쩡하지만 딸은 모기한테 물려서 온몸이 퉁퉁 부어 몰골이 숭악 해서 결국은 시집도 못가고 추녀의 대명사가 된다.
그러할 찌라도 엄마의 심정은 다른 법. "너도 시집가야 하잖니." 하니 "저는 양홍 같은 선비를 평생 섬기려합니다." 엄마는 깜짝 놀라 "그렇게 잘난 선비를 어떻게 감히." 소문을 들은 양홍은 그런 그녀를 아내로 맞아 산속에 들어가서 베를 짜고 밭을 일구며 산다.
아내는 진저리치는 가난에도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섬기는데 들고 오는 밥상에 놓여 진 찬들이 너무 예뻤다. 밥상을 방으로 들여와서는 눈을 아래로 내린 채 눈썹 위까지 상을 들어 올리는 거안제미지예(擧案齊眉之禮)를 멈추지 않았다.
산길을 지나다 하루 묵게 되어 이를 보게 된 거상 고백통(皐白通)은 가난한 남편을 섬기는 아내에 감동하여 양홍이 공부하는데 평생을 도움을 준다. 한때는 사랑한다며 간도 빼 줄 것 같다가도 남편이 돈 못 벌어오면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워 이혼해 버리는 비정세태에 화려한 돌싱은 없다는 송조 범엽이 쓴 후한서는 우회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