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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내게 용인 그리고 백암이란 곳은?

차경미(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


[용인신문] 해외유학 6년 그리고 부산생활 11, 17년째 나는 용인을 벗어나 살고 있다. 부산에서 우연히 용인사람이라도 알게 되면 마치 오랜 지인을 만난 듯 한톤 높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용인이 고향이 아니라면 그저 남남처럼 지나쳐 살아왔을 고림리 사람과 원삼 사람을 만나 가끔 함께 먹는 밥은 그렇게도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 내게 용인은 냉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어 늘 그립고 편들게 되는 곳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용인시내에서도 버스를 타고 30분가야 도착할 수 있는 백암이다. 그러나 용인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용인사투리의 사람들은 굳이 배개미출신이 아니어도 고향사람이 된다. 태어나 평생 함께 할 친구들을 만났고, 꿈 많던 나의 학창시절이 저장되어 있으며, 나의 아버지와 엄마의 마지막 생이 기록되어 있는 곳, 그래서 용인사람을 만나면 같은 장소에 또 다른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 앞선다. 그리고 이내 코끝이 찌릿하게 저려오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나이가 드나보다. 용인에 대해 추억할 것과 그리운 것들이 쌓여만 간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기억의 장소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그러나 120년 동안 변함없이 열리는 백암 5일장은 내겐 위로와도 같다. 장날은 일상에 밀려 잠시 접어두었던 추억을 열어보는 시간이다. 장날이면 조용하던 거리는 좌전, 원삼, 두창, 백봉, 장평, 옥산사람들이 장돌뱅이와 뒤섞여 또다시 생명력을 회복한다. 평소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선 비린내, 상큼한 과일 향 그리고 알록달록한 옷가지들과 농기구들도 장터에서 만큼은 조화를 이룬다. 가격을 흥정하며 실갱이 하는 소리와 서로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묻는 웃음소리로 장날은 마치 지역 잔칫날처럼 하루 종일 분주하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새벽 우시장은 한때 전국 최대의 소거래 장터로 명성을 누렸다. 소를 파는 아쉬움과 소를 맞이하는 만족감이 교차했던 장터에는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아저씨들로 늘 북적였다. 그리고 고단했던 새벽은 두둑해진 주머니가 보상으로 돌아왔다. 우시장 주변으로 생겨난 순대국집은 백암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젠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고향의 맛이 되었다. 여전히 5일마다 장이 열리는 백암은 퇴직하여 돌아가고픈 내게 마치 오래된 미래와도 같은 곳이다.

 

프로필:

백암고등학교·경희대학교 스페인어학과 졸업

남미 콜롬비아 국립대학교 중남미 역사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학 중남미 정치학박사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