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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내겐 개오동나무가 있다

이미상 시인



[용인신문] 그는 키가 크다. 그의 어깨는 늠름하다. 그의 손바닥은 넓다. 그는 멀리 있어 내가 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늘 내 곁에 있다. 나는 매일 그를 본다. 나의 사랑하는 개오동나무.


처음에 나는 그의 이름을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달리 볼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친정언니들이 사는 평촌에서 오래 살았다. 언니들 근처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막내인 내게 언니들은 김치도 담아주고 반찬도 해주고 애들도 돌봐주었다. 용인으로 이사 온 후 언니들과 밥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던 일상들이 사라졌다. 마치 언니들이 나를 따돌리고 저들끼리만 극장에 갔던 어린 날처럼 나는 버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가 다가왔다. 거기 아름다운 나의 개오동나무.


나의 개오동나무가 살랑거리기 시작하면 봄이 무성해지고 나의 일상도 기지개를 켠다. 그는 나를 다 안다. 내가 언제 일어나 커튼을 여는지. 누구의 전화를 받고 무슨 책을 읽는지, 오늘은 공원을 몇 바퀴 걸었는지, 왜 밤을 지새우는지.......


나의 개오동나무는 산길 입구에 서서 모든 계절을 다 지켜본다. 초봄에 산수유와 목련이 피고, 오솔길에 철쭉이 핏빛으로 물들고, 도로에 벚꽃이 지고나면 벚꽃보다 더 환하게 이팝꽃이 아파트를 덮어버리는 것을 본다. 봄의 마지막에 마로니에 꽃이 아이스크림콘처럼 부풀다 녹아내리는 것도. 무더운 여름 날 배롱나무 꽃망울이 분수와 함께 터져 버리는 것도, 그는 내가 잠들었을 때에도 공원에 포도나무 열매가 잘 익어가는 지 지켜볼 것이다. 아름다운 나의 개오동나무 때문에 폭우 속에서도 새들은 노래한다. 백석 시인에게 갈매나무가 있다면 내겐 개오동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