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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혐오하게 만든, 나쁜 정치인을 솎아내는 선거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선거는 항상 나를 흥분 시킨다. 오래전 기억 때문이다. 1992년 대선 당시, 행정병인 필자는 군 부재자 투표를 독려했다. 인사계와 함께 본부중대원들의 정치적 입장을 확인했다. 정작 문제는 필자의 투표였다. 그때까지 부재자 투표용지가 부대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중대 전원의 투표 참여가 필요했기에 단 한표였지만 상징성이 컸다. 기다리던 투표지는 선거 당일 도착했다. 군인이었지만 울진읍 선거관리위원회 지정장소에 가서 일반인들과 함께 투표를 하고 왔다. 당파성을 보여주지 않고, 소신 있는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여전히, 선거철마다 당파성을 보여야만 한다. ‘무관심이 가장 강력하다’, ‘선호하는 정당이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무관심이 기권을 전제로 한다면 더욱 심각하다. 개인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마저 포기하게 만든 정치권력의 교활성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언론들도 교묘하게 거드는 형국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원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구분하는 것, 그렇게 만든 정치와 정치인을 바꿔야 하는 이유이다.

 

후보의 이력에 대해 우리의 태도는 불감증에 가깝다. 여러 번의 선거에서 나를 좌절시킨 것은, 당선될 수 없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당선되는 이들 때문이다. 갑질과 언어폭력, 군 기피(본인과 자녀),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탈세, 국론 분열과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저질 정치꾼은 퇴출 우선순위인데도 어찌 그런 후보들이 당선되는가 말이다.

 

강자는 자기 사람을 감싸고돈다. 이것을 의리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숱한 부정청탁과 채용을 통해 지지세력의 확대를 과시한다. 반대로 약자는 자기 사람을 내치도록 요구(?) 받는다. 측근을 멀리하고 나면, ‘비열한’이라고 악의적인 뉴스들이 따라오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들의 출처에서 자유롭지 않은 집단은 거대한 언론의 도그마이다. 문학평론가 고 황현산의 표현대로 “고통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비된 고통이 불러올 고통이 더 끔찍하다.”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선거 이후 가 더 걱정되는 이유이다. 걱정은 꼭, 유권자의 몫이다.

 

‘도덕적 정당함이야말로 권력자에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단순히 ‘이데아’라고 단정 짓지 말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기존 정치의 개혁보다, 기성 정치의 패턴을 완전히 새로운 어떤 질서로 전환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국가론의 목적은 부정의(不正義) 보다 정의를 선호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정치인(선거 후보자)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면 평상시 그의 행동을 보면 된다. 일상적 행동이 그 자신이다. 사람의 몸은 교환, 교체, 대여하는 객체가 아니다. 사고(思考)와 생활을 동일시하는 게 그 사람, 그 주체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정작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역할이다. 후보자의 이력을 모르는 것은 게으름이라 생각하자. 게으름으로 인해 선택한 후보가 사고와 행동의 이상 증세를 보인다면, 그 재앙은 재난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재난은 그 사람을 선택한 사람뿐만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것이다.

 

변한다는 것은 거창하고 요란한 일이 아니다. 망가져 버린 세상을 바로잡는 것,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데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날이 바로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