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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채제공 뇌문비 앞에서 소원을. . .

백현주(평론가)

 

[용인신문] 새해 1월에 소원을 빌며 해를 맞이할 장소를 물색하다가 뇌문비 이야기가 떠올랐다. 뇌문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 말이다. 비는 용인시 역북동에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제 76호로 지정되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바른말을 하기로 유명했던 채제공이 죽자 정조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글이 각인되어 있다. 공식 이름은 채제공선생뇌문비(蔡濟恭先生誄文碑).

 

채제공은 사도세자 폐위가 논의될 때 죽기를 각오하고 이를 막았던 인물로 영조와 정조 모두에게 신임을 얻었을 뿐 아니라 탕평정치를 적극 돕기도 했다. 채제공의 행적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백성들의 고단함을 더하는 조정의 결정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섰으며 평안함을 위한 일에는 당색을 가리지 않고 추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를 추모하는 묘비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뇌문비는 정조의 글이다. 채제공과 정조는 죽어서도 이 땅에 남아 21세기를 수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묘소는 과거가 현재에 살아있는 공간이다. 묘소에 가면 무덤 주인의 과거를 추억하고, 그의 행적을 찾아보며 현실의 분주함으로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무덤을 지키는 석물들에 핀 이끼자국은 노인의 검버섯처럼 얼룩을 남겼지만 지혜로운 노인의 마음을 닮아 있다. 높은 벼슬에 임금의 신임까지 받은 인물임에도 소박한 묘역의 차림새는 그가 속 깊은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막스베버는 권위를 만드는 세 가지 요소를 정당성, 카리스마, 합법성이라고 말했다. 백성을 위해 조정이 존재하고 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에 걸맞는 정책을 만들고 실행했던 것을 정당성이라고 말한다면 왕 앞에서도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물러서지 않은 것이 카리스마요, 인간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합법성까지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진 인물이 채제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21세기에 들어와 수수한 무덤의 주인으로 남았지만 채제공의 권위는 아직까지도 나를 머리 숙이게 한다. 미디어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만 지도자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진짜 권위를 가진 인물이 적은 탓일 것이다.

 

20대에는 로또 당첨 같은, 잘생긴 남자친구 같은 치기어린 소원을 빌었다. 서른엔 집한 채만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용인에 터를 잡은 지 10년이다. 이제 기왕이면 용인 맛집에서 밥을 먹고, 짬짬이 용인 명소를 찾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 만큼 애정과 여유도 생겼다. 내 소원도 나이를 먹어서 그저 식구들 건강과 하는 일이 무탈한 것을 빌며, 내일도 오늘처럼 평안하길 빌게 되었다. 아마 채제공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를 그의 묘소를 둘러보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