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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어울려 살아가기

권영갑(소설가‧ 패션저널 제작이사)

 

[용인신문] 용인에 정착한지 햇수로 6년이 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단지 경치가 좋고 평화로워 보인다는 느낌만으로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산을 깎아서 만든 단지형 마을에 열일곱 번째로 입주했다.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과 마당에 둘러앉아 고기도 구워 먹으면서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엄두를 못 내던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는 사이, 가구 수가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40여 가구가 되었다. 숫자가 불어나다보니 누구네 집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을 지내면서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것도 귀찮아져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근처 고깃집을 가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6년이란 짧지 않는 시간은 이웃 간에 정뿐만 아니라 미움도 쌓게 했다. 크고 작은 다툼을 지혜롭게 풀지 못해서 서로 먼 산 보듯하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주민 회의를 하다가 얼굴을 붉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다시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은둔(?)하는 이웃도 생겼다.

 

마을이 고지대에 있어서 겨울에 눈이 오면 함께 단지 내 가파른 도로의 눈을 치워야 하고, 여름에는 잡초를 뽑는 등 마을 청소를 공동으로 해야 한다. 그밖에 주민들이 힘을 합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일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주민도 더러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워서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해지니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웃에 한 발짝이라도 더 양보하려는 사람, 마을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데서도 헌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S씨가 그런 이웃 중의 한 명이다. 수돗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자청해서 단지 입구의 가압펌프 맨홀에 들어가 보수 작업을 한다. 가로등이 꺼져 진입로가 컴컴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이도 S씨이다.

 

이렇게 마을을 위해 헌신적인 사람이 S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도로의 낡은 배수시설을 말없이 보강하는 이웃, 재활용 분리수거장을 묵묵히 정리 정돈하는 이웃, 눈이 그친 새벽 홀로 가파른 진입로의 눈을 치우는 이웃, 잘못 배달되어온 택배 상자를 직접 가져다주는 이웃 등등 선한 사람들이 많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담장 화단에 심은 대나무를 아내와 함께 정리할 때였다. 한낮의 더위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냉커피가 눈앞에 불쑥 들어왔다. 내가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앞집 아주머니가 집에서 냉커피 두 잔을 만들어 온 것이었다. 자기 집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웃을 위해 마음 써 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마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사람들, 이웃을 위해 크고 작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이들이 우리 마을에, 또 용인에 있기에 용인의 경치가 더 푸르고 평화롭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