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기자는 용인 처인구에서 반세기를 넘게 산 토박이다. 태어난 집에서 지금까지 대를 이으며 살고 있다.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났고, 남아있어도 주거지를 옮겨 산다. 농촌에 아직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향이자 농경 정서가 맞아서다. 그런데 요즘 시골 마을에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 신축 전원주택도 1~3인 가구들이다. ‘경기도 1인 가구 실태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전국의 1인 가구 비중은 29%다. 10가구 중 3가구가 혼자 산다. 용인시는 41만 5797세대 중 1인 가구 비율이 22%(9만 156세대)다. 전국 평균치보다는 낮지만 매년 증가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임대주택 입주조건 완화 등 주택 안정성 때문이란다. 수도권 위성도시들이 다 비슷하지만, 용인시는 더 빠르고 많은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인구 증가만 보더라도 30년 전보다 약 90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 무엇보다 용인시 지도가 확 바뀌었다. 오래된 골프장과 큰 저수지 몇 개 빼고는 다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로망도 경부·영동고속도로를 제외하면 다 새롭게 신설, 확장되었다고 보면 된다. 각종 도로와 전철망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용인
백군기,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등 치적…“용인 백년대계 마무리” 이상일, 윤석열 당선인과 친분 과시… “집권당 후보 밀어달라” [용인신문] 오는 6월 1일 실시되는 용인특례시장 선거가 민주당 백군기 후보와 국민의힘 이상일 후보의 대결로 압축됐다. 용인시는 지난 3월 9일 현재 인구 109만 2840명으로 지방자치 선거일에는 11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시는 3구 4읍 37행정동, 35법정동 체재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기준으로 만18세 이상 유권자는 88만 6987명이다. 4대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교육감 선거 등이 동시에 치러지면서 미니 대선 수준이라는 평가다. 용인시 선거구에서도 용인특례시장 선거를 중심으로 이미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됐다. <편집자 주> # 백군기 용인시장 “지역발전 초석” 민주당 백군기(72) 후보는 현 용인시장으로 재선에 도전한다. 백 후보는 “민선 7기 4년간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중단없는 용인 발전을 위해 제8기 용인특례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면서 재선을 자신했다. 백 후보는 민선 7기 시장을 역임하면서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 유치, 플랫폼시티 조성 추진, 어울림파크 추진 등 의미 있는 성과를
[용인신문] 민주당 후보, 백군기 용인시장 확정
김동연, 양자 대결·3자 대결 우세 김은혜, 본격 선거운동 추격 별러 강용석, 열세 속 보수층 표심 자극 [용인신문] 6·1 지방선거는 광역·기초단체장 선거, 광역·기초의회 선거, 광역·기초의회 비례대표 후보자 정당 투표, 교육감 교육위원회 위원 선거를 포함하여 8매의 투표용지에 기표해야 한다. 특히 광역의원은 용인시 선거구에서만 2명이 증원돼 총 10개 선거구에서 각 1명씩 10명을 선출한다. 기초의원 선거구는 1개가 늘어나 모두 11개 선거구에서 지역구 28명, 비례대표 4명 등 모두 32명을 선출한다. 선출 방법은 인구 편차에 따라 2~4명까지 선출한다. 경기교육감 선거는 7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가운데 이른바 진보 진영의 후보단일화 성사 여부가 관건이다. 이번에는 경기지사 예비후보들의 면면에 대 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6·1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야 후보들의 대진표가 속속 결정되고 있다. 먼저 경기지사 선거는 민주당 김동연 후보와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맞붙는다. 김동연 후보는 민주당 경선 1차 투표에서 50.67%로 과반을 득표하여 후보로 확정됐다. 김은혜 후보는 당심의 압도적인 지지로 국민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선 유승민 후보를 누르고
[용인신문] 각 당의 4대 선거 후보 공천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일찍 공천을 받은 예비후보들은 본선전에 들어간 셈이지만, 아직 경선 중인 후보들은 막판까지 애를 태우고 있다. 공식 후보등록일은 5월 12~13일로 본 선거전은 고작 보름이다. 후보들에겐 긴 시간일 수도 있으나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 검증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선거는 4대 지방선거에 교육감 선거까지 겹쳐 선거공보물도 그 어느 때보다 많다.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회, 광역·기초의회 비례대표 후보자 정당 투표, 교육감 교육의원 선거를 포함하면 투표용지만 8매에 이른다. 그만큼 후보자 숫자도 많을 수밖에 없다. 자칫 유권자들은 선거공보물도 제대로 읽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할 수도 있다. 특히 용인시는 특례시임에도 도농복합시로 기초단체장이나 광역·기초의회 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이 후보 검증보다는 지지 정당 또는 지연·혈연·학연 등에 치우칠 우려가 높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투표율도 높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후보자 검증보다는 정당의 조직력 싸움이 판세를 결정지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용인특례시의 살림살이를 이끌어갈 제대로 된 일꾼들을 뽑아
[용인신문] “출마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딱히 내보낼 만한 인물이 없다.”라는 게 여야 정당들의 공통적인 고뇌다. 6·1지방선거는 4대 선거지만 시·도 교육감 선거까지 겹쳐 거대 선거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부터 용인지역 선거구는 단체장을 제외한 광역(도)의원과 기초(시)의원 선거구가 모두 늘었다. 우려한 대로 막판까지 선거구 조정 때문에 출마예정자들이 혼선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대선 패배 설욕의 기회로, 국민의힘은 완벽한 정권교체를 위해 전폭적 지지를 호소 중이다. 모두 대선 연장전의 각오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5년 임기 중 4년을 함께 할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까지 새로 뽑다 보니 민주당은 2년 후 총선과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고, 국민의힘은 여소야대 형국을 그나마 상쇄시킬 기회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수완박 프레임과 서울시장 공천 파동까지 겹쳐 지방선거 필패론이 나올 정도다. 민심의 향배가 어떻게 흐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민의힘도 새 정부 내각 인물 등용을 위한 청문회 등 적잖은 난제들이 많다. 용인지역 초미의
[용인신문] <인터뷰 – 용인시장 출마예정자에게 듣는다> 대담: 용인신문 김종경 발행인/대표 용인특례시 미래 운명 좌우 중요시기 인구 증가·개발 등 외형적 성장에도 내실 다지지 못해 현안 여전히 숙제 110만 경제 자족도시 도약 견인 자신 Q. 정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주요경력과 근황은? = 현재 용인시의회 의원으로 12년 동안 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용인대학교 객원교수로 부족하나마 제 경험을 후학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도 갖고, 지난 대선 때는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우리 후보와 당의 정책과 비전을 알리고자 고군분투했다. 주요경력은 제8대 용인시의회 전반기 의장을 역임했다. 수지구축구협회 회장과 수지중앙라이온스클럽 회장, 수지신용협동조합 감사로 활동했으며, 용인시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지금은 용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용인시장 출마 선언 후 준비에 여념이 없다. Q. 2010년부터 3선 의원을 지낸 현 시의회 의장이다. 용인시장 출마의 변은? = 이번 지방선거가 향후 110만 용인특례시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플랫폼시티가 완공되면 대전환의 시발점이 될 것이며, 특례시 승격에 맞춰 대전환에
[용인신문]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이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유권자들은 건물에 걸린 대형 현수막과 거리 인사를 하는 후보들밖에 볼 수 없지만, 선거전은 이미 물밑에서 치열한 상황이다. 입후보예정자들은 본선에 앞서 1차 관문인 경선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의원 정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우선순위의 공천만 받아도 사실상 당선증이나 마찬가지다. 경선에서 탈락하면 출마 기회를 박탈당하니 본선보다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소속 출마도 가능하지만, 당선 확률이 낮아 공천을 희망하고 있다. 도지사나 시장 선거는 정당 싸움이다 보니 공천과정부터 치열하다.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는 여야 모두 기 싸움부터 뜨겁다. 정권의 명운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이 집중된 곳은 용인시를 비롯한 수원, 고양, 창원 등 4곳의 첫 번째 특례시장 선거다. 그중에서도 유독 용인시장 출마예정자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정권교체로 당선 가능성을 크게 본 탓인지, 국민의힘 용인시장 후보 공천신청자만 15명이었다. 중앙당 면접 전에 2명이 사퇴했고, 1차 컷오프 후엔 3명으로 최종 압축됐다. 쏠림현상이 두드러진 국민의힘 후보
[용인신문] <인터뷰 – 용인시장 출마예정자에게 듣는다> 대담: 용인신문 김종경 발행인/대표 경찰 요직 두루 거치고 정치 입문 지역주의 타파위해 지방선거 출마 종합운동장 공원화 민의수렴 소홀 도전·창업 열기 가득한 도시 만들터 Q. 경찰 고위직 출신이다. 정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주요경력은? = 경찰을 그만두고 총리실에 민정실장으로 들어갔다. 다시 대구로 내려가 민주당에 입당한 게 2018년 1월이다. 정치한 지 4년 좀 더 됐다. 주요경력은 경찰대학 5기 졸업(수석입학), 홍콩/런던 경찰영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대구/부산 경찰청장, King’s College London 석사, 국무총리 민정실장, 동국대학교 경찰학 박사, 문재인 대구/부산공동선대위원장, 제34회 행정고등고시, 이재명 법률지원단 부단장 등이다. Q. 정치에 입문한 계기와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 2016년 9월 나이 50에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데 오로지 공공영역에서만 일해왔다. 그때 마침 촛불 혁명이 시작되었고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시대와 역사에 눈을 떴다. 삶을 바꾸는데 정치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정치를 결심
급격한 도시화로 ‘특례시’ 비약전 발전 현 시장 난개발 우려 4년 동안 허송세월 공무원 유능하지만 기관장 무능·무개념 용인시 백년대계 최고의 도시 육성 계획 [용인신문] Q. 용인시 고위 공직자 출신이다. 주요 경력과 근황은? = 1979년 당시 용인 군청에서 원삼면으로 발령받아 2018년 도시정책실장으로 명예퇴직할 때까지 약 40년 동안 용인시를 위해 일했다. 9급에서 2급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최연소 국장 승진(만47세)과 경제산업국장, 도시주택국장, 건설교통국장, 건설사업단장 등 최장기간 국장재직(10년)으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였고, 지방 이사관(2급)으로 명예롭게 퇴직하였다. 퇴임 후 시장 출마 준비와 취미로 한국 전통서각을 배웠고 초대작가로 전시회까지 했다. Q. 공직 재임 당시 시 공직사회 내에서 호남 출신 대부로 불려왔다. 보수성향 정당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 88년 즈음해서 용인 호남향우회가 처음 만들어질 때 가입하고 호남 출신 공직자 후배들이 많아 몇 명이 모임을 하다 호공회라는 명칭으로 공무원 모임을 만들었다. 대부까지는 아니고 나이나 직급이 조금 위다 보니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보수성향 정당을 택한
원외 위원장 한계 극복 지역민원 해결사 보수 험지 기흥서 윤석열 지지 이끌어내 젊은피로 구태의연한 기성정치와 결별 ‘시민펀드’ 도입해 개발이익 시민과 공유 [용인신문] Q. 지난 2020 총선에서 용인지역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그간의 근황은? = 총선 이후 용인을 당협위원장으로서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고 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대선에서의 국민의힘 지지율을 2년 총선 때보다 10% 추가로 올리게 되었다. 원외 위원장임에도 불구하고 통학로 확보나 소음, 악취문제, 관내 사업 시예산 확보 문제 등 지역 시의원과 힘을 합쳐서 지역의 크고 작은 이슈의 해결사 노릇 자처했다. 무료급식소, 환경 정화 활동 등 정기적으로 지역봉사를 하고 ‘프로젝트 제로 봉사단’을 자체적으로 발족하여 활동했다. Q. 총선 이후 2년 만에 용인시장에 출마하는 이유는? = 당협위원장으로서 대선도 성공적으로 치르고 보람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정치구조와 특성상 당협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정치적 특성에 따라 현역의원들조차도 지역 예산을 비롯 활동하는 것이 만만찮다고 생각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당협위원장을 맡아서 주민들을 만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
[용인신문] 매일 아침 체크 해온 것이 국내외 코로나19 발생 현황이다. 확진자와 사망자 추이를 보면 주식시장보다 더 변화무상하다. 예측 가능한 ‘변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 때문에 모든 속단은 금물이다. 이제 전문가들은 최고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라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바이러스 세력들이 대체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하락장의 숫자뿐이다. 2019년 말 최초 발견된 코로나19는 2020년 초 하루평균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것이 2년여 만에 100만 명(잠정 집계)에 육박했다. 지금은 분명 급하강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4월 초인 현재 30만 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숫자는 처음엔 상상조차 못 했지만, 치사율이 떨어지면서 초창기의 극심한 공포감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전 세계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와 함께 노마스크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미 많은 나라가 제한을 풀면서 해외여행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전으론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마스크 착용 의무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라질지 몰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앞에 다가온 역사의 변곡점’은 절대 과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