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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대도시 용인, 문화·역사의 뿌리 찾아야”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자광 스님(용인 반야선원 주지)

 

지역 대표 문화재는 항몽성지 처인성
몽골과의 전쟁서 승리한 역사적 가치
호국의 장소 걸맞는 성역화 작업 절실
반야선원, 국가산단 부지 수용 가능성
이전한다면 호국도량으로 재탄생 염원

 

용인신문 | 용인의 반야선원 주지인 자광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이다. 한국 선불교의 살아있는 큰 스승으로 지난해(불기 2567년) 원로의장에 취임하면서 정치권을 향해 “(죽은 뒤) 화장하면 한 줌 재밖에 안 남는데 뭘 그리 가지려고 싸움만 하는지 애처롭다”고 말해 언론에 화제가 된바 있다.

 

최근엔 22대 국회의원 불자들의 모임인 ‘정각회’ 창립총회에서 “갈등, 인간의 갈등이 있을 수가 있죠. 그러나 가슴에 못을 박는 갈등은 일으키지 마세요.”라고 법문을 했다. 정각회는 국민의힘 소속 6선인 주호영 부의장 등 기존 회원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국 조국신당 대표까지 합류, 지난 21대 37명보다 17명이 늘어나 역대 최다다. 이번 자광 스님과의 차담 인터뷰는 여야 대립 구도가 심각한 정치권에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큰 스님을 통해 현 정국 과 지역 이슈에 대한 지혜를 듣고자 함이었다.<편집자 주>

 

지난 13일 오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시미리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예정부지 중심에 위치한 ‘반야선원’에서 주지인 ‘자광 스님’을 만났다. 자광 스님은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기자에게 와우정사(열반종)에서 오는 길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종파를 넘나드는 원로의장다운 면모에서 편안함과 위엄이 동시에 느껴졌다.

 

자광 스님은 기자의 정치 관련 질문을 미리 차단하려는 듯 “오늘은 용인 이야기만 합시다”라며, 웃음으로 시작했으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용인시는 급속도로 확장 중이지요? 인구 110만이면 대형도시입니다. 그런데 용인특례시에 붙은 ‘르네상스’는 무슨 뜻인가요?”라는 화두를 던지며 차담이 시작됐다.

 

“앞으로 용인에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오면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강한 시가 될 거예요. 급속한 인구 증가와 함께 국회의원도 4명이나 있으니 웬만한 도 단위 도시가 부럽지 않겠죠.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역대 용인시장님들의 문화마인드입니다. 용인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아주 깊은 곳임에도 (문화의) 근본이 없는 용인시가 되었거든요.” 스님의 일성은 짧고, 단호했다.

 

“용인의 대표 문화재는 처인성입니다. 용인의 자랑이자 국가의 자랑이지요. 지금부터 800여 년 전 몽골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괴롭혔나요. 10여 차례에 걸쳐 공격했고, 한 번 올 때마다 고려인들을 처참하게 살육하며 재산을 빼앗았고, 심지어 부녀자들을 겁탈하고……오죽했으면 몽골반점이라는 게 생겼겠습니까.”

 

처인성은 고려시대 몽골의 제2차 침입(1232) 때 승장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한 전투 현장이다. 당시 고려(고종19)는 몽골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천도를 단행했다. 이때 용인 처인부곡민들은 백현원이라는 사찰에 있던 김윤후 승장과 함께 몽골군의 적장을 사살, 처인성을 세계사적인 전투 현장으로 만들었다. 처인성은 197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지난 50여년 간 제대로 된 성역화 작업은 물론 국가문화재 등록도 이뤄지지 않았다.

 

역사기록을 보면 처인성은 산성(대동여지도)이었고, 현 위치는 평지성이기에 좀 더 폭넓은 발굴조사 필요성이 제기돼 왔었다. 이 과정에서 단일로는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단지 중 하나인 ‘한숲시티’가 처인성 부근에 들어오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시작됐다.

 

“세계에서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곳은 처인성 한 곳 뿐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 얼마나 귀중하고 대단한 곳인가요? 그럼에도 용인시는 그동안 이렇게 방치해 왔어요. 이제 밥술이라도 먹고 살 만하니 처인성을 통해 용인을 한번 알려보자는 뜻입니다. 역대 용인시장들한테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뭔 소리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자광 스님은 1970년에 군승 중위로 임관 후 군포교에 매진해 오던 중 1980년 군승단장에 취임했고, 1993년 국방부 군종실장을 역임한 후 1995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후 용인에 ‘반야선원’을 개원, 30여 년간 포교 활동 중이다.

 

그동안 용인불교사암연합회 회장과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을 거쳐 현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장을 역임하면서도 꾸준히 호국불교를 주창해 왔다. 특히 반야선원과도 지근거리인 처인성 성역화 작업에는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차담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반야선원(약1000평)이 국가산단 부지에 수용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로 넘어갔다. 스님은 ‘존치’를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나랏일에 반대할 맘은 없다는 말씀을 통해 반야선원 이전 희망 대체부지가 처인성 부근임을 사실상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용인시와 LH 측에도 스님의 뜻을 전달한 상태지만, 아직 돌아온 답은 없다고 했다.

 

속세로 치면 팔순을 넘긴 원로 스님이기에 평생을 꿈꿔온 호국도량 건립의 뜻을 이번 기회에 처인성을 통해 펼치고 싶어하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스님은 이미 마음속 구상을 마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처인성의 역사 가치를 통해 이 땅의 청소년들과 국민들에게 국가관은 물론 몸과 정신건강을 위한 명상과 식문화 개선 등 ‘국민정신교육기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불교’자를 빼도 좋다며, 현재 지어진 처인성기념관에도 제대로 된 콘텐츠를 채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용인 안에 ‘진 보배’가 다 있는데, 그걸 놔두고 왜 밖에서 찾느냐고 되물었다. “처인성은 교과서에는 있는데, 정작 용인에는 없다”는 어느 보살의 말이 현실감있게 들려왔다.

 

단일 반도체 도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면서도 정작 정신문화를 이끌 문화의 뿌리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용인 르네상스가 무엇이냐는 되물음으로 자광스님과의 차담 인터뷰를 마쳤다.

 

앞으로 몇 년 후면 반야선원은 물론 이동·남사읍 일대 수백만 평이 산업단지 개발로 천지개벽을 하며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 무엇이 남아있을 것인지 노스님의 눈 속엔 이미 훤히 비춰지고 있으리라.

 

스님은 돈도 필요 없고, 돈을 어떻게 쓰는 줄도 모른다며, 반야선원에 있는 석박사급 젊은 스님 6명이 있으니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이 노력들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호국도량 건립이 마지막 염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대담: 본지 발행인 김종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