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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위한 ‘용인 반도체 메가시티’인가?

LOCAL FOCUS

 

SK 반도체클러스터 산단 조성 ‘상생 퇴색’
지역 건설사 뒷전… 고작 장비임대에 그쳐
용인시 인허가 하세월… 속터지는 기업들
도시계획위 위원들 현장 깜깜이 탁상심의
이상일 시장 ‘민관토론회’서 난국 풀어야

 

용인신문 | 용인시가 ‘반도체 메가시티’라는 거대한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지역 향토 기업들은 특수 대신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막대한 개발 이익이 대기업과 다른 지역 대형 용역사들에게만 집중되고, 정작 용인에 뿌리내린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본지는 용인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60일짜리 법정 기한이 6개월로 늘어나는 행정 난맥상과 심의 권력이 된 심의 기구의 비효율에 대해 지역 경제 동반 성장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 ‘장비 임대업자’로 전락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SK 반도체클러스터 산단 조성 현장에 용인 업체들이 참여하는 분야는 크레인, 포클레인 등 단순 장비 임대가 전부라는 것이다.

 

토목 감리 전문업체 대표 A씨는 현실을 직시했다.

 

“장비는 여기서 쓰든 제주도에서 쓰든 필요한 만큼 갖다 쓰는 거니까 의미 없는 얘기다. SK 하이닉스에 용인 지역 용역업체가 몇 개나 참여하는지 행정이 조사를 해봐야 한다. 건축이 됐든 설계가 됐든 감리가 됐든, 세금을 여기서 내고 앉아 있는 업체에 대해 우대 정책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게 만들면 그게 무슨 지역 활성화 효과가 있겠느냐.”

 

지역 업체 소외는 곧 ‘경험치 제로’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SK 산단의 건축감리나 토목감리, 기계정비, 소방, 통신 등 기술 분야는 도면만 읽을 줄 알면 할 수도 있는 영역이지만, 참여 기회 자체조차 없다. 큰 규모의 사업은 대부분 서울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 설계 전문업체 대표 B씨는 다른 지자체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용인시 행정의 소극성을 비판했다.

 

“용인에는 아파트 설계를 한 번도 못 해본 업체가 300여 개나 되는데, 기회가 안 주어지니 무슨 경쟁력이 생기겠느냐. 인력도 확충할 수 없고. 충청도 청주만 해도 지역에서 개발되는 부분들을 지역 업체에 그만큼 우대해 줬기 때문에 대전·청주권에서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용인시는 지역 업체에 의무 참여든, 일정 지분율이든 기회를 줘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어질 소재·부품·장비 협력 업체 공사나 배후 도시 조성 사업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설계 한 번 해본 적 없는 업체에 누가 일을 주겠느냐는 절망감이다.

 

■ 복지부동 ‘느림보 행정’

지역 기업들이 대형 사업에 참여할 기회마저 상실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용인시 도시 건축 행정의 느린 속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잡한 인허가 행정 절차는 사업의 기회 비용을 무참히 깎아 먹는다.

 

지역 개발 컨설팅 대표 C씨는 현장에서 겪는 고통을 여과 없이 토로했다.

 

C씨는 ”용인시가 도시 건축 행정에서 전국에서 제일 느리다고 소문이 났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사업 승인의 법적 처리 기간은 60일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두 달 내에 처리되는 건 거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소 6개월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다칠까 봐, 특혜 시비에 휘둘릴까 봐 몸을 사리고, 밑에 사람에겐 강요한다는 의식을 하기 때문인지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복합 심의 대신 따로 행정을 처리하니 중복 행정으로 인한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C씨는 ‘신속 행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력은 이미 AI에게 물어보면 다 답해줄 만큼 발전했다. 프로그램을 개발해 법적 기준에 맞는지만 체크하게 만들면 인허가 처리에 3일이면 충분하다. 내가 시장이라면 인허가 서류 접수 후 3일 이내 처리되게 만드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 지역 정서 외면하는 ‘심의 권력’

행정의 소극성과 함께, 용인시의 도시계획위원회 등 각종 심의 기구 운영 방식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C씨는 심의 위원 25명 중 시 공직자와 시의원 등 당연직을 제외한 대부분이 용인 정서를 모르는 ‘외부 위촉 위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특혜 시비 방지’ 명목으로 지역 전문가를 배제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장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 심의위원이라고 앉아 있으니 말이 되나. 제3의 타 지역 업체들을 위촉해 놓고, 그 사람들은 용인 정서도 모르는데 현장 답사도 하지 않은 채 ‘재검토’ 의견을 내니 사업자들만 힘든 현실”이라며 “지역 정서를 모르는 심의위원들이 도면만 보고 부적정한 의견을 주면서 ‘심의 권력’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역 경제계 내부의 ‘자성’과 ‘성장 추진체’에 대한 요구도 뚜렷했다.

 

A씨는 “거대한 개발도시 용인에서 행정이 동참할 수 있는 업체를 양산시키고, 인큐베이터 시키고, 트레이닝 시켜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는 ‘성장 추진체’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기회 균등 배분을 통한 성장이 필요하다”며 “건축 설계, 감리 등 자격을 갖춘 업체들을 모아놓고, 작은 지분이라도 나누어 돌아가며 경험치를 쌓게 해주는 것이 공정한 행정이다. 가르쳐야 배우지 않겠느냐”고 제언했다.

 

건축 설계 대표 B씨는 “최근 몇 년간 종합건설사업자 시공능력평가액(토목건축공사업) 전국 순위를 보면 100위 안에 든 용인 업체는 없다”며 지역 건설업계에 대한 행정 당국의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시장, ‘공론의 장’ 열고 난맥상 일소해야

용인시의 ‘반도체 르네상스’는 대기업 특수와 지역 소외라는 양극화의 갈림길에 섰다. 인구 110만 특례시 발전을 위해선 ‘공장 유치’를 넘어 지역 기업의 ‘자생적인 성장 동력’을 키우는 소프트웨어적 정책이 절실하다.

 

지역 업체들은 용인시장을 비롯한 행정 수뇌부가 더 이상 ‘특혜 시비’라는 핑계 뒤에 숨지 말고, 적극적인 행정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호소한다.

 

“개연성 있는 부분들을 귀담아 듣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현재 용인시에서 사업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동반 성장해야 도시와 지역이 함께 발전되는 것”이라는 A 대표의 말처럼, 이제라도 변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에 이상일 용인시장은 지체 없이 공무원, 시의원, 그리고 토목·건축·감리 등 지역 경제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긴급 민관 합동 토론회(집중 토론)를 주재해야 한다.

 

현장의 애로점과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비효율적인 인허가 프로세스와 지역 정서 등이 외면되는 심의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행정의 변화’만이 반도체 시대의 ‘용인 경쟁력’이자, 지역 경제인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경‧이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