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갑 편에 왈.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서경에 나오는 말을 맹자가 써먹는다. (太甲曰 天作孼 猶可違 自作孼 不可活 此之謂也 태갑왈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 차지위야) 공자는 인간의 내면적 규범을 인(仁)이라 하고, 외면적 규범을 예(禮)라 했다. 속으로 사랑은 하되 겉으로는 예를 지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원인이 인간의 윤리 도덕이 타락이므로 내면적 규범인 인(仁)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한다. 이를 맹자는 내면적 규범인 인(仁)이란 것이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에 있던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성선설(性善說)이 그것이다. 여기에 시비를 건 게 순자다.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니 모든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기르는 방법은 예를 따르는 것보다 더 나은 길은 없고, 스승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좋아하는 것을 한 결 같이 하는 것보다 더 신통한 것은 없다(養心 凡治氣養心之術 莫經由禮 莫要得師 莫神一好 양심 범치기양심지술 막경유예 막요득사 막신일호)며 외면적 규범인 예(禮)를 통해 내면적 규범인 인(仁)을 정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악설(性惡說)이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염치없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충청도 땅에선 떠나야 한다. 싸가지 없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라도 땅에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수 없다. 저런 저. 저. 후랴덜 이 말속에는 너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는 아웃이야를 내함 한다. 위의 말은 관자의 사유에서 비롯됐다 한다. 물론 설(說)이다. 관자 책 권지일 목민(牧民) 관자의 목민사상은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를 말하고, 다산의 목민사상은 고을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말함편에 창고가 실해야 예와 분수를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과 욕을 안다(倉庫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춘추 제나라 명재상 관자(管子 BC723-BC645)는 예(禮)의(義)염(廉)치(恥). 사유(四維)를 말한다. 유(維)는 벼리, 즉 절대로 끊어지면 안 되는 끈이다. 끈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끈 두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끈 세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히고, 끈 네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기울어진 것은 바로잡을 수 있다. 위태한 것도 안정시킬 수 있다. 뒤집어져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 끝이다. (國有四維 一維絶則傾 二維絶則危 三維絶則覆 四維絶則滅 傾 可正也 危. 可安也 覆. 可起也 滅. 不可覆錯也.
대의 민주주의는 투표로 말한다. 이정희 의원은 아까운 의정활동 시간들을 박근혜 대통령을 기스내는 걸로 낭비를 하는 것으로 비춰져 참 안타깝다. 지난 대선 TV토론 때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며 매섭게 쏘아붙이다 결국 역풍 한방에 훅갔던 순간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물론 이정희 의원이 먹고살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십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 오버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 열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를 올바로 할 수 있도록 압박을 한다면 좋으련만. 박근혜 대통령은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통일대박론이고, 둘째는 대통령 선거당시 내세웠던 공약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대통령 당선에 관련된 부정선거에 관한 시비다. 여기서 대통령 선거당시 공약들과 부정선거 시비는 제1수권 야당인 민주당 몫으로 남겨두고, 이정희 의원 이하 그 당은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볼 때, 성격이 약간은 다르니까 차라리 북한을 압박(?)하는 쪽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노회한 정치적 수완이 있어야하는데 아쉽게도 이정희 의원 측에는 그
천하를 통일한 월왕 구천(재위 BC497-BC465)은 범려에게 나라를 둘로 나누어서 다스리자 하니 범려는 화들짝 놀라며 그날로 야반도주 한다. 일설에는 서시를 데리고 도망했다고 하는데 그건 드라마적 요소고 사마천의 사기는 그렇지 않다. 제나라로 도망을 가서 도(陶)라는 작은 고을에서 금융업을 해서 재물을 많이 모은다. 에는 도망가기 직전 함께 구천을 도와 부차를 쳤던 국무총리격인 대부 문종에게 두 문장의 편지를 한다. 더 이상 잡을 새가 없으니 좋은 활은 활집에 들어가고(飛鳥盡 良弓藏)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니 사냥개는 삶아먹는다(狡兎死走狗烹). 이용가치가 없자 버림받는다는 뜻이다. 훗날 한신은(?~BC196년)은 교토사 주구팽 비조진 양국장(狡兎死 走狗烹. 飛鳥盡 良弓藏) 여기다 적국파 모신망(敵國破 謀臣亡)을 덧붙여 적국을 격파하니 모신이 죽는 구나했다. 구천은 어떤 위인이냐. 장경오훼(長頸烏喙)다. “목이 길고 까마귀 입이라 고통은 함께 하지만 기쁨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알아서 처신하시오”하고 튄다. 아뿔사. 정신 차린 문종은 병을 칭하고 집에 칩거를 한다. 구천이 병문안을 와서 왈, “귀공이 나에게 원수를 갚는데 일곱 가지 계책 중에서 세 가
1959년 10월 후안카를로스코페스 무도단과 함께 푸에르토리코 순회공연 중이던 피아졸라는 아버지 빈센티 노니노가 죽었다는 비보를 뉴욕에서 듣는다. 다녀올 여비가 없었던 가난한 작곡가 피아졸라는 눈물로 「안녕히 가십시오. 아버지」라는 뜻의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 를 작곡해서 아버지 영전에 바친다. 그로부터 54년 후 2014년 2월 소치올림픽 빙판위에 요정 김연아가 이곡에 맞춰 춤을 춘다. 온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이 요정의 일거수일투족에 넋이 나간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시각에 한 여자가 파랑색 매직으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그리고 생에 마지막 글을 쓴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70만원이 담긴 하얀 봉투를 놔둔 채 2월 26일 저녁 8시 30분경 숨진 채 발견됐다. 우리가 이 죽음에 대하여 아파하며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우리도 이렇게 죽어갈지 모른다는 암시성 때문이다. 문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하는데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임금으로 존경을 받고 백성은 편안히 살게 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공이 말한다. 백성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것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7대손 토정. 아버지 이치(李穉1477-1530)는 1504년에 일어난 갑자사회에 종조부(從祖父) 이파가 연루되면서 진도로 유배를 갔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해금, 이듬해 사마시 합격 후 의금부도사와 수원판관 중 과로사 한다. 그의 어머니 또한 광산김문의 여식으로 토정 나이 16세 때 세상을 뜬다. 토정의 큰형 이지번의 아들 북인영수 아계 이산해가 장조카이며 한음 이덕형은 아계의 사위다. 아계는 조선제일의 노비출신 학자 13경을 토씨하나 안 빠뜨리고 외운다는 구봉 송익필의 교우다. 토정의 외조부 만취당 김맹권은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 폐위 후 왕위 찬탈하자 고향인 보령으로 낙향한 후 세상과 등진다. 그의 아들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극성(1474-1540)이다. 토정은 훗날 화담 서경덕의 문도가 되며 동인의 영수 초당 허엽과 서인으로 영의정에 오른 어부사의 시인 사암 박순이 그의 동문이다.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더불어 조선 삼대 기인인 방외지사(方外志士)로 불린다. 선조 6년 1573년 6월 조목(趙穆) 정인홍(鄭仁弘) 최영경(崔永慶) 김천일(金千鎰)과 더불어 행실이 가장 뛰어나다는 탁행지사
잘나면 잘난 대로 쓰고, 못나면 못난 대로 쓰면 된다. 왜냐, 잘났으면 그 잘남으로 공을 세우려 할 것이고, 못났으면 못난 대로 충성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개성을 살려 사람을 부려라(使智使勇 使貪使愚)라는 뜻의 육도삼략(六韜三略)중 삼략(三略)의 중도(中略)편에 나오는 말이다. 태공망 여상은 이를 용인술(用人術)이라 한다. 선진 편에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에 누가 더 훌륭합니까? 하니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과유불급을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로 알고 있으나 이는 오역이다. 과유불급은 넘침과 모자람은 같다. 즉, 공자는 중용(中庸)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나중에 자공이 자신을 자장과 비교한 사실을 알고, 불쾌해진 자하는 스승인 공자께 묻는데 이 물음은 논어가 아닌 열자(列子)에 기록 된다. 안회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공자 왈, 안회의 인(仁)하는 마음은 나보다 한수 위다. 자공의 사람 됨됨이는 어떠합니까? 자공의 말 재주는 천하제일이다. 자로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자로의 용감무쌍함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럼 자장의 사람됨은 어떠합니까? 나는 자장의 중후(重厚)함에 훨씬 못 미친다. 그렇다
역산(歷山)의 농부들은 밭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매일 싸운다. 순(舜)이 역산에 가서 경작을 하자 1년 만에 역산의 농부들은 서로 양보를 한다. 뇌택의 어부들은 어장을 놓고 서로 싸운다. 순(舜)이 뇌택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자 1년 만에 서로 양보를 한다. 하빈(河濱황하 강변의 도기(陶器)는 찌그러졌고 잘 깨진다. 순이 하빈에 가서 도기를 만들자 1년 만에 하빈의 도기는 찌그러지지도 않고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순이 사는 곳은 1년 만에 부락이 형성되고, 2년 만에 마을을 이루며 3년이 되자 도시가 된다. 공자는 이게 바로 성인의 덕화라며 칭송하는데 한비자는 15권 34장 난(難) 1편에서 고개를 젓는다. 그깟 하나를 고치는데 무슨 1년씩. 3년이 걸려서야 겨우 세 가지를 고쳤으니 어느 하 세월에. 그렇다면 세상은 구석구석에 나쁜 것이 산처럼 쌓였는데 이 모든 나쁜 것을 고치려면 도대체 순의 나이가 얼마나 길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기준을 정해서 좋은 일을 하면 상을 주고 기준에 맞지 않는 좋지 않을 일을 하면 벌을 줘라. 이런 법이 아침에 발표되면 저녁쯤이면 고쳐지고. 저녁에 발표되면 다음날 아침쯤이면 나쁜 짓은 사라진다. 이렇게
춘추(春秋)시대에 송(宋)나라 양공은 예로 천하의 패자(覇者)를 꿈꾸나 초나라가 눈엣 가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송나라가 먼저 진을 치고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넌다. 공자 목이가 절호의 기회라며 닥공을 주장한다. 양공 왈 준비 안 된 물속의 적을 치는 건 인(仁)의 군대가 할 짓이 못된다 군대가 강을 건너 진을 칠 무렵 또 공격을 건의 한다. 양공 왈. 적군의 전열이 갖추지도 않았는데 치면 적의 병사들 목숨만 뺏는 격이 되니 이 또한 인(仁)의 군대가 할 짓이 못된다 결국 전열을 가다듬은 초군에 밀려 송나라는 대패하고 양공 또한 부상으로 죽는다. 세상은 주제넘게 베푸는 자를 일러 송나라 양공의 어리석음이란 의미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그는 7세 전에 이미 상서어(上書語)로 편지를 보낼 때 올림(上)과 문안 인사를 드린다는 드림(呈)을 구분 했으며 왕이 된 후에도 신하의 상소문 말미에 상서어는 올림이나 상서, 배상, 근상, 상장, 복배상 등을 써야 한다고 지적하는 예학에 밝은 제후다. 좌전이나 사략, 25사 등을 보면 그는 병법에 능통했고, 예학 또한 밝다고 전한다. 훗날 맹자는 양공을 일러 어진 이의 표상이라며 회맹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마천은《사기(史記)》〈전단열전(田單列傳)〉편에서 말한다. 제나라 화읍(畵邑)은 현자 왕촉이 산다. 연(燕)의 장수 악의(樂毅)는 제나라를 정벌하면서 화읍 주변의 30리 안으로는 진군을 금한 뒤 왕촉에게 귀순은 아니어도 연나라에 좋은 말 한마디만 해주면 1만 가구의 후(侯)로 봉하겠다고 말한다. 대신 거절하면 화읍을 생매장 하겠다 겁박한다. 현자 왕촉은 도대체 나를 어찌 보고 하더니 입고 있던 선비복 학창의를 방바닥에 편 뒤 손가락을 깨물어 열 두 자의 대련(對聯)을 쓴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정숙한 여인은 지아비를 두 번 바꾸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 그리고 스스로 목을 맨다.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다. 정치 초짜가 아이돌 팬클럽을 능가하는 성원으로 지난 대선 때 부동의 박근혜 대선 후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조직도 없고 당도 없고 인맥도 없다. 그냥 딸랑 안철수 이름 석 자 뿐이다. 국민들은 안철수란 이름에 열광했다. 그런 그가 1년이 지난 지금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면에 벌어지고 있는 문자 그대로『지랄』같은 일과 무관치 않다. 윤여준의 귀환이 그것이다. 그의 귀환은 이미 예견됐
하나님의 이름도 시인 앞에 오면 한갓 낱말에 불과하다. 21세기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글쓰기다. 그 중심에 시(詩)가 있다. 공자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라했다(子曰, 詩三百에 一言以蔽之하니 曰 思無邪 論語 爲政). 人口에 회자되는 문장을 경책(警策)이라 하는데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이 지은 시가 사람들 입에 외워진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더 이상 인간세계는 읽을 만한 시가 없다며 오직 달만 바라봤던 그 오만의 절정에 이른 시인 이태백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맹호연이다. 그는 당나라 양주(襄州) 양양(襄陽)의 소지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알려진바 없고 자(字)를 호연(浩然)이라 하고, 양양 남문 밖에 산다하여 맹양양(孟襄陽)으로 불린다. 스스로를 맹자의 후손이라 했으며 일찍이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여 공부에 힘써 불혹에 이르러 장안(長安)으로 올라와 과거를 봤으나 번번히 낙방한다. 겨우 먼저 등과한 벗들의 추천으로 늘그막에 미관말직을 얻는다. 결국은 이마저도 굴욕적이라며 은둔하여 시를 쓴다. 그의 시 숙건덕강(宿建德江)에서 야광천저수(野曠 天低樹) 강청월구인(江淸月近人) 대구(對句)를 이태백은 무릎을 꿇고 읽었다 한다. 이 대
당년에 거두려면 곡식을 심고. 십년에 거두려면 나무를 심고. 백년에 거두려면 사람을 심고. 영원히 거두려면 복음을 심으라. 이 말의 출전은 一年樹穀 十年樹木 百年樹人중국 춘추시대 제(齊)환공(桓公)을 패자(覇者)로 만든 관자(管子)의 인재 관인데, 제주도 한라산 기슭 해안리에 살던 일립(一粒)이란 소년이 서당을 다니면서 읽었던 관자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훗날 일립은 목사가 되는데 정암(正岩)박윤선박사.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와 더불어 한국교계 전설이 된다. 정암은 7서 사서삼경를 뗐고, 또 외웠고, 일립과 추양은 4서 논어.맹자.중용.대학.만 뗀다. 일립이 세운 한국성서학교 천마홀(당시 학생식당)에서 맹자의 한 대목을 물었다. 정암은 침묵을 하더니 15초쯤 지나자 답변을 했다. 일립에게 물었다. 허허허 웃으시더니 20초 만에 답변이 왔다. 추양에게 물었다. 글 세.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하더니 25초 만에 답변이 돌아왔다. 아. 이 쩌는 전율. 사서삼경과 무경칠서를 합쳐 14경이라 하는데 고전을 읽다가 모르는 게 있어서 송담께 전화로 물었다. 10초 만에 답변이 돌아왔다. 대략 20년 전쯤 언젠가 두계역 근처에서 한송에게 물었다. 3년 동안 끙끙 앓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