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그리운 이유를 축구국가대표 이영표는 TV광고에서 서울우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렇고 귀여운 거인 K1 선수 최홍만과 한류 열풍의 주인공 보아 또한 서울우유를 마신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4/1이 매일 서울우유를 마신다. 서울우유는 맛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다. 우유를 비롯해 다양한 유제품에 이르기까지 ‘서울우유’가 만들면 먼저 믿음이 가는 이유! 그것은 까다로운 제품생산 공정과 제품개발, 연구에서 비롯된다. 1975년 용인공장을 준공한 이후, 양주·안산공장을 계속해 건립하며 국민 건강을 지켜온 서울우유, 중국 시장 진출을 발판으로 국내 뿐 아니라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좋은 우유 만들기’ 외길 70여년 서울우유는 1975년 용인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양주, 안산공장에 이어 2005년에는 거창공장을 건립, 전국소비자에게 보다 신선하고 깨끗한 우유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품질의 핵심부분인 첨단 생산설비 시설을 갖춘 이 곳에서 1급A 최상의 원유로 영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최고의 우유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또한 미래에 더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우유팩 재활용, 슬러지 재활용 등 더 푸르
삶의 뿌리를 찾아서 글.배한진 조선일보 기자 인물 탐방 기사를 준비하면서 몇 개의 원칙을 세웠다. 그 첫 번째는 생존 여부 떠나 사람들의 기억에 큰 인상을 남긴 인물. 두 번째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과 접촉이 있었던 인물. 세 번째는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인물 등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준을 세워 놓고도 첫 번째 탐방 대상 인물을 선정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첫 번째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조상 대대로 용인 토박이인 필자로서는 자칫 공감대를 얻지 못할 인물을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다간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임이 있을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격의 없는 조사’를 벌여 봤다. 이런 원고를 쓰게 됐는데, 누구를 첫 번째 대상으로 했으면 좋겠느냐는 자문을 구한 것이었다. 질문에 응해주신 분들은 50명 정도. 연령은 30~50대가 주를 이뤘고, 대부분 용인에서 오래 살아온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얻어진 답이 ‘곰보할아버지 故 고성덕(高成德.1923~1999)옹’이었다. 특정 학연이나 지연에 관계 없이 용인 토박이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인물. 개인적으로도 그 분의 이야기를 활자로 남긴
이재용 회장은 창립부터 현재까지 꼭 지키고 있는 세 가지 경영 원칙이 있다. 첫째 고객제일주의다. 고객이 있어야 기업이 있고, 기업이 있어야 임직원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고객의 편의와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투명경영을 신조로 전 임직원이 고객 제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둘째 인재양성의 원칙이다. 기업의 근간은 사람이므로 임직원들의 자질 향상과 업무능력 제고를 위해 설립초기부터 교육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전 직원의 해외 연수를 통한 자질 향상과 단합력을 통해 세람의 임원은 모두 세람에서 성장한 인력으로 충당하며 일당백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셋째 리스크관리 원칙이다. 금융업의 특성상 신용, 금리, 시장, 유동성, 관리, 제도적 변경 등 많은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의 예측과 대처는 이익보다 우선하고 있다. 따라서 지점 개설도 이익보다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넷째 이익실현 원칙이다. 기업이 정당한 기업 활동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익 실현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고, 고용의 확대와 사회 환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
글/홍순석 우리 용인이씨는 신의와 겸손을 가문의 전통으로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공을 세우신 안곡공(이길권)께서는 개국공신의 예우를 사양하였으며, 구성부원군(이중인)께서는 고려말엽 두문동 72현 중에 한 분이십니다. 이후 여러 대의 선조들께서 충직을 내세워 조선초기에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조선조의 청백리공(이백지)은 청렴과 충직을 실천하신 선비의 귀감이십니다. 이러한 정신은 “ 우리 용인이씨 종인(宗人)은 효도와 우애를 행실의 근본으로 삼고, 충직과 부덕으로 덕행을 높이고, 청렴과 정직으로 지조를 갖추자”는 종훈(宗訓)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중견 우량 저축은행으로 성장 저축은행이 몰려오고 있다. 저축은행은 최근 수년간 다진 수익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 시장의 선점을 위해 지점 및 출장소 신설 등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영업점 신설은 금융감독원의 승인 사항으로 재무건전성과 경영성과를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영업점이 늘어나는 것은 저축은행업계의 경영이 개선됐음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강남 등 특정지역에 몰리던 지점 설립이 금융서비스 소외지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천 상업중심지에 본점을 둔 세람저축은행은 저축은행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세람은 1984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20년 넘게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건실한 영업구조를 바탕으로 11월 용인에 첫 지점을 신설했다. 10년 내에 영업점 3개를 신설할 계획이지만 이르면 내년부터 수원점을 비롯 해마다 1개씩 영업점을 늘려나간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 결산(2006년 6월말)에서 당기순이익 63억원(세후이익)을 달성, 설립 이래 유지해온 지속적 성장을 과시하고 있으며 2006년 6월말 현재 총자산 2570억원, 수신고 2250억원, 여신 2140억원, 자기자본 225억원
글.홍순석(강남대교수, 용인향토문화연구원회장) 한 지역의 문화는 지형적 여건과 그 지역에 거주하는 인물군(人物群)에 의해 형성된다. 어느 한 지역에 누군가가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토지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후손이 증가하고,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동족촌(同族村)이 형성된다. 그리고 가문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인근지역으로의 확산과 분화가 이루어진다. 용인지역은 비교적 다양한 성씨가 중소규모의 동족촌을 형성하면서 나름대로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용인의 명가를 통해 용인지역의 문화를 조명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용인지역의 토성사족(土姓士族)으로 명맥을 계승해온 가문은 용인이씨(龍仁李氏)뿐이다. 추계추씨(秋溪秋氏)도 용인에 본관을 둔 성씨이지만 실재하지 않는다. 용인이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중앙으로 진출하였고, 이를 토대로 용인지역에서 명문거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용인이씨의 시조 이길권(李吉卷)에 대해서 정사(正史)에 전하는 기록은 없다. 용인이씨 세보(世譜)에 전할 뿐이다. 세보에 의하면 그는 신라 효공왕 8년(904)에 용인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
살기 좋은 용인, 쾌적한 죽전에 입주하신 모든 입주자 분들께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죽전지구는 당초 올해 말 사업 준공 예정이었으나 토지 매수 고객이 장기간동안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 당초보다 3개월 이상 사업 준공 기한을 단축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죽전 입주자 분들과 용인시 관계자 등 모든 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번 사업 준공으로 연내 지적공부(지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서류) 정리 완료 및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게 되었고 죽전 지구내 공공시설물에 대한 용인시로의 인수·인계를 적극 추진하고 있어 그동안 관리권 이원화 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어왔던 입주민들께 더욱 편리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토공 임직원들은 입주자들이 보다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녹지 4개소 추가설치 및 신국도43호선 변 터널타입 방음벽 설치 등을 통해 친환경단지 조성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죽전지구 공공시설물에 대해서도 용인시와 함께 두 차례에 걸친 점검과 주민 의견을 수렴, 중앙공원을 놀이기능과 연계한 바닥분
글·정기숙(문화해설사)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으뜸이다. 이는 부족한 지하자원, 좁은 국토라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이런 교육열은 인재양성으로 이어져 국가발전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인재를 양성하던 향교. 용인시에는 현재 1523년에 건립된 양지향교와 1400년에 건립된 용인향교 두 곳이 있다.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 양지의 옛 선비들이 공부하던 양지향교로 발길을 옮겨보자. # 향교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의 시초는 고구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처음으로 유교교육 기관인 태학(太學)이 건립되고 교과로는 오경(五經)과 삼사(三史)가 채택되었다. 태학이 중앙에 세워지고 귀족자녀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켰다면 경당은 평민층 자제와 지방 호족의 미혼 자제를 교육 시켰다. 교육내용은 경전과 궁술이었다. 시대의 변화는 중앙과 지방의 교육기관의 필요성으로 나타나고 고려시대 학교 제도로서 향교가 발생한다. 고려시대의 향교는 성종 대를 거쳐 인종 대에 와서는 문묘의 제를 갖춘 학교로서 지방의 군현에 하나씩 설치된다. 고려시대의 향교는 공자의 선성을 모시는 제사기
죽전택지개발지구의 입주가 시작된 지 2년여가 지났다. 입주 당시 좁은 도로와 부족한 교통시설, 주민 편의시설 부족으로 인한 불편 등이 지적됐지만 최근에는 서울과 인접해 있는데다 지하철, 도로 등의 개통으로 경기남부의 교통요지이자 경제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풍부한 녹지와 공원, 다양한 주민편의시설 및 문화시설 등이 있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들이 하나둘씩 갖춰지면서 죽전은 분당과 일산에 이은 최고의 계획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106만평 대규모 택지개발 죽전택지개발사업지구는 한국토지공사가 지난 1990년대 말 경기남부지역의 무절제한 주택건설로 인한 공공시설과 기반시설 부족을 해결하고 수도권 지역의 심각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시 죽전동과 보정동 일원 약 106만평에 조성한 택지이다. 1990년대 분당과 일산 등 수도권 5대 신도시가 개발된 이후 준농림지 지역에서의 중소규모 택지개발이 전국적으로 이뤄지며 난개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중 수도권지역에서 새로운 주택지로 각광을 받았던 용인시는 무분별한 택지조성으로 ‘난개발’의 대명사처럼 여겨졌고 급격히 늘어난 인구에 비해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의 불만
글.박시영(사단법인 한국들꽃문화원 원장) 우주의 원초적인 본능의 향 가을국화 감국은 ‘농익은 여인의 숨결’입니다. 가을의 들국화는 사람의 마음을 산산이 흐뜨려 놓고 맙니다. ‘농익은 여인의 향’은 감국의 향기를 맡아보지 않고는 감히 논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모든 자연의 한해를 마감하는 끄트머리에서 뿜어 나오는 진득한 열정의 향, 바로 감국의 향이라 생각합니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여인의 진한 향, 이것이 바로 우주의 원초적인 본능의 향이며, 이를 애써 닮으려하는 감국이 존재의 이유라 생각 듭니다. 벌, 나비 외 곤충들의 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마저 꽃의 향기 속에 흠뻑 취해 못 견디도록 해 놓고는 즐거워하는 가을의 화신 들국화 감국. 해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는 오늘 서향을 바라보는 산자락 끄트머리에 가시면 분명 엄살쟁이 여인, 감국을 만나실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엄살을 부리느라 땅에 주저앉아 있거나 서로 등을 기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꽃만큼은 강한 흡입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꽃 속 깊은 곳으로 빠뜨리고 짓궂게 입을 벌려 웃고 있지요. 그 강하게 몰려오는 우주의 향. 응석처럼 바람결에 한 움큼 토악질 해내는 여인
인텔리전트 도시-흥덕 U-City 흥덕 U-City는 첨단정보기술 인프라를 반영한 신 개념의 정보화 도시이다. 체계적인 도시 관리를 통해 주민의 안전과 복지를 향상시키고 신호등과 도로, 도시 전체가 인터넷 망으로 관리되는 국내최초 유비쿼터스 도시로 개발 되고 있다. 위치상 서울과 판교, 동탄 등 타 신도시와 근접해 있으며 주변에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등이 있어 타 지역 주요 도시와의 근접성이 뛰어나다. 2008년 입주를 목표로 총면적 65만평 중 주택건설용지 37%와 상업건설용지, 도시지원시설 용지가 들어서며 자그마치 56% 이상을 공공시설용지로 배정하여 보다 편리하고 쾌적한 계획도시를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편리한 생활권…교통도 편리 흥덕지구는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일대 64만6000평에 9274가구가 단계적으로 들어선다. 판교까지 10분 거리이고 수원 영통지구(100만평)와 광교테크노벨리(341만평) 사이에 위치해 있다. 빠르면 2009년 서울~용인간 고속도로가 뚫리고 정자~수원간 신분당선 연장선도 이용할 수 있다. 광교산과 태광CC, 원천 유원지 등 녹지대로 둘러싸여 있고 단지 중앙에는 근린공원도 들어설 예정이다 흥덕지
글.이동형(여행전문가/KBS교통라디오방송 여행프로 진행) 청송이란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청[靑]은 푸른색과 동쪽, 젊음, 고귀함을 상징하는 동쪽에 위치한 불로장생의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송(松)역시 사철 푸름의 소나무와 장수, 번무를 뜻하는 학이 노니는 평화스런 정경을 암시하는 곳이니 결론적으로 동편에 위치한 불로장생의 신선세계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에 가장 적합한 선경세계를 뜻하니, 이곳 청송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최고의 웰빙 고장이다. 송백은 울울창창한데 노을구름이 멀리 덮여있어 맑고 그윽한 고을이 신선세계 그대로이니 ‘이곳이 바로 청송이다’라는 시를 세종시대 관찰사를 역임한 홍여방이 청송을 돌아보고 남겼지만, 늦가을 낙엽을 즈려밟고 천혜의 비경이 어우러진 청송을 찾게 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될 것이다. ▲ 신이 만든 걸작품 - 주왕산 국립공원 76년도에 12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주왕산은 해발 720미터의 그리 높지 아니한 산이지만 설악산,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의 하나로 큼직큼직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는가 하면 대전사부터 시작되어 제 3폭포까지 이어지는 4킬로의 계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