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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후보들이여! 한명회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보라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정변의 성공은 한명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책사 노릇만 한 게 아니고 세조의 기무사, 정보원장 임무를 수행하며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운동까지 완벽하게 차단했다. 수양대군 이유가 한명회를 가리켜 “나의 장량이로다.”라고 말했으나 ‘음모와 모사’에 능했던 두 사람의 야합을 포장한 것이다.

 

한명회는 출세를 위해 수양대군에게 줄서기 했다. 음서로 관직을 얻은 그였기에 권력욕과 재물욕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신을 무려 4번 그것도 모두 1등을 받았으나 백성을 위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한 내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명회로부터 시작된 절대 권력자들을 훈구파라고 부른다. 16세기 중반 이후 조선은 그들만의 나라였다. 권력을 잡은 자들의 부패는 거침이 없었고, 세종이 만든 평화로운 체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명회의 권세는 ‘압구정 사건’으로 이어졌다. 한명회는 한강 변에 자신의 호를 딴 으리으리한 정자를 짓는데, 그 이름이 ‘압구정’이었다.

 

1481년, 명나라의 사신을 자기 정자인 압구정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성종에게 요청했다. “압구정 정자를 사신이 유람하고 싶어 하는데 장소가 협소해 평평한 곳에 장막을 치고 싶습니다. 대궐에서 쓰는 대막을 쓰게 해주십시오.” 성종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장소가 좁다면 강변의 왕실 소유의 정자인 제천정을 사용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한명회는 이를 거부했다. “제천정이 좋기는 하지만 사신이 압구정을 오고 싶어 합니다. 전하께서 제천정을 사용하라 하시면 그렇게 하겠지만 신의 아내가 본래 숙질(宿疾)이 있는데 지금 병이 더하므로 그 병세를 보아서 심하면 비록 제천정 일지라도 신은 갈 수 없을 듯합니다.”

 

이는 면전(面前)에서 임금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이에 진노한 성종은 한강 변에 있는 정자 중 제천정과 희우정(喜雨亭)을 제외하고 모두 헐어버리라고 명했다. 그 자리에 있던 승지들은 바로 한명회를 탄핵했다.

 

한명회(1415~1487)에 대한 사관들의 평가는 가혹했다. “권세가 매우 성하여, 따르며 아부하는 자가 많았고, 손님들이 문에 가득하였으나, 접대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한때의 재상들이 그 문에서 많이 나왔으며, 조정 관원으로서 채찍을 잡는 자까지 있었다. 성격이 번잡한 것을 좋아하고 과시하기를 기뻐하며, 재물을 탐하고 색을 즐겨서, 토지와 금은보화 등 뇌물이 잇달았고, 집을 널리 점유하고 어여쁜 첩들을 많이 두어, 그 호사스럽고 부유함이 한 때에 떨쳤다.”

 

아무리 뉴스를 멀리해도 6·1지방선거에 나오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신경이 쓰인다. 미리 밝혀두지만 지지하는 후보가 아직 없어서 궁금하다. 후보 선정 기준이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사적인 형식으로 결정될까도 걱정이다. 시민을 위한 올바른 후보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기려는 모사(謨士)의 대표적 행위로 굳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단골 후보들은 배수(背水)를 치고 나섰다지만, 유권자들에겐 오합(烏合)에 지졸(之卒)처럼 보여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까탈스러운 유권자라고 생각하는 필자는 지면을 빌려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조은의 <지금은 비가…>로 선전을 부탁한다. “벼랑에서 만나자. 부디 그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 다오 … 아 기적같이 부르고 다니는 발길 속으로”

 

긴 첨언, 비록 한명회가 살아생전 성공하였다 하나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선비 중 성삼문과 박팽년을 존경하는 이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러니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물어야겠다. “당신이 역사를 안다면, 한명회가 되려는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삼문의 정신을 따르는 후보를 찾을 것인가?”

 

짧은 첨언, 설마 한명회가 되겠다는 후보도, 한명회와 같은 후보를 선택할 유권자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