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을 대표한다는 믿음이 사회를 지배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풍요가 인류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풍요’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소소하지만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소설이 있으니 바로 『순례주택』이다.
건물주 순례 씨는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99쪽)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순례자처럼 살겠다는 생각에 이름을 순례(巡禮)로 개명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사는 순례 씨. 힘들게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었지만, 그가 마련한 주택은 세입자들에게 몸의 보금자리뿐 아니라 마음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순례 씨의 집과 마을을 우습게 본다. 그들은 오래전 카프카의 『변신』에서 읽었던 그레고르의 가족과 묘하게 닮았다. 세입자들과 가족 간의 묘한 밀당도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오수림과 오미림은 핵심세력을 대표하는 대적점 역할을 한다.
소설은 누가 이기고 지는 스토리가 아니다. 순례주택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모두가 이웃이 되는 이야기다. 열심히 일해서 학력이나 부동산을 자신의 기표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립된 인간으로 떳떳하게 살아내는 이야기다. 진짜 가난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최근 출간한 푸스 리스터의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를 함께 읽는다면 우리의 사유가 더 넓고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