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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된 용인신문… 존재 이유는 ‘정론과 직필’

오룡(조광조 역사연구원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언로(言路),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할 말을 한다.

1868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고종의 대리 섭정이었던 시절. 서슬이 퍼런 권력을 향해 한 장의 상소문이 도착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는 정사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재물은 백성들이 하늘로 여기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경복궁 재건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다.”라는 최익현의 상소 앞에 최고 권력자 대원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백전의 발행으로 극심한 물가상승을 초래한 상황에서 구중궁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役事)에 대한 백성들의 생각을 명확하게 파악한 최익현의 완승이었다.

 

#중립은 선(善)이 아니다.

도그마의 어원은 그리스어 ‘생각하다(dokein)’에서 유래했다. ‘의견 ·결정’을 의미한다. 관점과 신념은 결함이 아니라 사유(思惟)에 가깝다. 중립과 중도를 선(善)이라고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립 행위는 보신과 기회주의에 가깝다. 그러므로 신문이 가진 도그마는 악(惡)이 아니다. 그들의 신념일 뿐이다. 문제는 그 신념의 질(質)에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결과물을 보고 평가하면 그만인 것이다.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사적인 이익을 위한 존재하면 미련 없이 버리면 된다. 그뿐이다.

 

#정론과 직필은 극심한 사유의 결과이다.

정론(正論)과 직필(直筆)은 양립해야만 하는 단어이다. 각자의 도그마로 존재하면 가치가 더 빛나는 말이다. 그렇다고 정론과 직필이 당위적인 것은 아니다. 당위가 아니라 경합과 갈등이라는 극심한 사유의 결과물이라야 독자들이 감동한다. 중립과 균형의 패러다임에서는 자기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은 자기 도그마가 명확하게 존재할 때 나타난다. 자신의 당파성도 모르고 상대방의 도그마도 모를 때 나타나는 것이 균형과 견제론이다. 균형의 역사가 존재한 시기는 선사시대일 가능성이 크다. 기록의 시대라는 역사 시대부터 시작된 계급 사회의 출현 이후를 보면 균형의 저울은 부서져 버렸다.

 

#사족을 달다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한다. … 상방검(尙方劍·임금이 보검)으로 주륙하고 머리를 도성 문에 매달도록 명한다면 민심이 비로소 상쾌하게 여길 것”이다.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이 남긴 글이다.

지난 32년 동안 용인신문이 추구했던, 앞으로 용인신문이 지향할, 도그마는 분명하다. 정론(正論)과 직필(直筆). 용인신문 존재의 이유이며, 존재의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