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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청뱀 해를 맞이하여…

명리학으로 본 을사년(乙巳年)
오광탁(경기대학원 동양철학과 석사 /  '별땅연구소' 명리 유튜버)

 

용인신문 | 60년마다 돌아오는 을사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좋은 기운으로 보이진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강제로 박탈당하고, 5년 뒤엔 완전히 국가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경술국치의 순간을 만난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 비통함과 절망감을 “을사년스럽다”는 표현으로 남겼으며, 이는 후에 날씨나 분위기가 스산하고 쓸쓸한 상황을 묘사하는 “을씨년스럽다”라는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며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었지만, 이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없이 이루어진 굴욕적 외교로 평가받았다. 국민은 이를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정부는 계엄령과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다. 이 사건은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역사의 청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1545년, 조선 4대 사화 중 하나인 을사사화가 발생했다. 사리사욕에 눈먼 문정왕후와 소윤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기득권인 대윤 세력을 역모로 몰아 숙청한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사림이 희생되었고, 국가의 기강은 무너졌다. 이후 외척 정치가 강화되어 부패와 혼란은 가중되고, 민생과 국력은 바닥이 되었다. 이는 결국 을묘왜란과 임진왜란이라는 대참사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을사년은 한국 역사에서 권력자들의 사리사욕으로, 그들의 비리와 기만으로 인해 외세의 이득을 주는 아픔의 시절로 역사에 남는다.

 

# 때가 무르익지 않아 어려움

을사(乙巳)의 기운을 주역의 괘로 풀어보면 풍천소축(風天小畜)이 된다. 괘사(卦辭)에서 “형통하나 구름이 빽빽하게 차 있어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였다. 이는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뜻하고 어려움이 있음을 상징한다. 풍천소축의 때는 주나라를 세울 문왕이 은나라 주왕의 폭정 아래, 감옥에 갇혀 있던 시기를 말한다. 이렇듯 을사년에는 작은 것을 탐하는 자들이 세상의 큰 뜻을 거스르고, 악인이 되어 선인을 가둔다.

 

하지만, 선인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이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 큰 뜻을 이루려는 노력의 시기로 볼 수 있다. 풍천소축의 시기에 문왕은 유리옥(羑里獄)에 갇혀 7년 동안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여 주역 64괘를 완성했다. 이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인내하며 힘과 지혜를 길러, 나라를 세울 명분과 기반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을사의 기운은 이처럼 어려움은 있지만, 작은 인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결국 위대한 성취로 꽃피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역사 속 을사년… 경국대전 발표·을사환국 단행

우리나라 을사년의 모든 해가 나쁜 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에서는 세조부터 성종 임금까지 25년간의 노력 끝에 완성된 법전(경국대전)이 발표된 해가 을사년이었고, 1725년에는 정조는 붕당정치를 막고자 탕평책의 일환으로 을사환국을 단행하여 분열된 정국을 안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외국에서 을사의 긍정적인 사건으로, 1965년에 감비아, 몰디브, 싱가포르가 독립을 이루었으며, 미국에서는 마틴 루서 킹이 셀마 행진을 하며, 소수민족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진보적인 변화가 있었다. 1905년 과학 분야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 발표하여 현대 물리학의 기반이 다져졌으며,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평화로운 협상을 통해 갈등 없이 독립을 이루어 냈다. 이처럼 을사년에 좋은 일도 많았다.

 

# 평화 사랑하는 이들의 손에 대한민국 새로운 시작

2025년 을사년을 앞둔 명리학자로서, 내 마음엔 두려움과 희망이 같이 있다. 청뱀의 녹색은 생명의 상징으로 개성과 자기방어를 뜻하며, 뱀의 상징은 불처럼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직진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기운이 잘못 쓰면, 사리사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을사오적 같은 이들이 나타나, 자신의 권력과 폭력을 가지고 자신이 멸망할 때까지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다. 반대로, 현명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나선다면, 그들은 주나라의 문왕처럼 자기만의 개성과 지혜를 드러내며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이다.

 

부디 을사년엔, 분열된 정치와 사회를 평화롭게 아우른 영조의 탕평책처럼, 제대로 된 법과 질서를 세운 성종의 경국대전처럼, 폭력과 기만이 아닌 조화와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손에 대한민국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선택이 이루어진다면, 개인의 욕망이 아닌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작은 한 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뜻깊은 역사의 시간이 되리라.

 

#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준비의 해

개인적으로 을사년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이를 좋은 습관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야무진 해가 될 수 있다. 풍천소축처럼 작은 것들을 쌓아 아직은 아니지만, 큰 변화에 다가갈 수 있다. 용기를 갖자. 아직은 작고 푸른 뱀이지만, 점점 자라 이무기가 되고, 마침내 세상에 축복을 주는 아름다운 용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니 멀리 보자. 일이 년이 아닌 백 년 이백 년을 보아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코앞에 이득이 아닌, 더 큰 미래를 위해 을사년에 작은 시작을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