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흥 중심축 ‘동백죽전대로’ 점령 당해
처인·수지 지역 도로와 숲도 마찬가지
가시박·단풍잎돼지풀·미국쑥부쟁이 등
8종 용인 서식… 닥치는 대로 뻗어나가
용인신문 | 인구 110만의 용인특례시. 그 시민들의 허파 역할을 해야 할 도시 숲이 생태계교란 식물의 공세에 질식하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협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는 덩굴식물로 인해 도심 녹지 생태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 특히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가시박 등 무서운 번식력으로 무장한 이들 침입자는 나무를 고사시키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을 넘어, 시민의 안전과 건강까지 위협하는 주범으로 떠올랐다.
■ 덩굴에 점령당한 용인 도시숲
문제의 심각성은 용인시 기흥구의 중심 도로인 동백죽전대로 주변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43만 시민이 살아가는 기흥구를 관통하는 이 도로변은 이미 덩굴식물의 거대한 점령지가 된 지 오래다.
동백동 호수마을 영동고속도로 하부 도로변은 덩굴식물들이 뒤엉켜 거대한 녹색 벽을 이루고 있고, 법화터널과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로 향하는 구간의 녹지는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뒤덮여있다.
상황은 주거단지 바로 옆에서도 심각하다. 청덕동 아파트 단지와 동백동 주상복합아파트 사이 녹지는 가시박과 미국쑥부쟁이 덩굴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심지어 동백동 참솔마을 아파트 단지에서 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지는 인도 바로 옆까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환삼덩굴이 똬리를 틀고 있어,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녹색 재앙’은 기흥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처인구와 수지구 곳곳의 도로변과 도시숲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용인서울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포곡읍 마성리 진출입로 주변은 물론, 시민들의 발이 되는 42번, 45번 국도변까지 예외 없이 덩굴식물에 점령당했다. 이정표와 교통 표지판을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숲을 죽이는 ‘조용한 암살자들’
환경부가 생대계교란식물로 지정한 덩굴식물은 단풍잎 돼지풀과 가시박, 서양등골나물, 양미역취 등 18종이다. 지난 2023년 환경부가 진행한 수도권 내 생태교란식물 분포현황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용인지역에는 가시박과 가시상추, 단풍잎돼지풀, 도깨비가지,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서양등골나물, 양미역취 등 8종의 서식이 확인됐다.
하지만 최근 용인시에서 진행한 현장 조사 및 퇴치작업 결과 처인구와 기흥구 지역에서 환삼덩굴도 발견됐다. 지역 곳곳으로 각종 덩굴식물들의 서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덩굴식물이 숲 생태계에 미치는 파괴력이 기후변화 못지않다고 경고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용인지역에 서식하는 환삼덩굴은 환경부가 지정한 대표적 생태계 교란 식물로, 숲과 농경지, 하천을 가리지 않고 침투한다. 숲 생태계를 교란할 뿐만 아니라, 꽃가루는 심각한 알레르기 비염의 원인이 된다.
가시박은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별명처럼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외래종이다. 호박잎을 닮은 넓은 잎으로 나무 전체를 뒤덮어 햇빛을 차단하고 결국 말라 죽게 만든다.
단풍잎돼지풀의 경우 꽃가루에 알레르겐이 함유돼 있어 인체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데다, 생장력이 우수해 경작물에 피해를 입힌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덩굴식물들이 소중한 탄소 흡수원인 도시 숲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 시, 종합대책 마련 … 심각성 따라잡긴 역부족
시는 지난해 말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 종합관리계획을 수립, 부랴부랴 퇴치작업에 나서는 모습이다. 올해 1억 2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 민간단체와 전문 용역업체를 통해 경안천과 탄천 등 주요 서식지 16만 9825㎡의 생태계 교란 식물을 퇴치헀다.
하지만 광범위한 확산 속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고온다습한 기후로 인해 덩굴식물의 생육이 더욱 왕성해져, 심각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생태계 교란 식물을 포함해 덩굴식물로 인한 도시숲을 파괴 현상을 막기 위한 효율적 방안 마련이 용인시의 시급한 당면 과제라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며 “하지만 환경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도 큰데다, 전국적인 현상인 만큼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생태계 교란 식물 퇴치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제초제 등 약품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환경 문제 등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침이나 예산지원도 없어 일선 지자체 차원에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임병완 용인시 기후환경국장은 “시민들에게 심각성을 알리고 제거 활동에 동참을 유도하는 민관 거버넌스 구축 등 도시 숲을 지켜내기 위한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흥구 동백지구의 한 야산에 서식하는 덩굴식물을 제거하는 모습.
기흥구의 한 다세대 주택을 뒤덮은 덩굴식물.
처인구의 야산에서 나무를 뒤덮은 칡덩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