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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용인신문 창간 33주년 기념

박숙현의 과학태교-‘엄마의 밤’이 ‘아기의 낮’을 만든다

산모 수면 리듬, 단순한 휴식 문제 넘어
아기가 세상 배워가는 ‘첫 시간표’ 중요

 

용인신문 |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임신부들이 많다. 배가 불러 체위가 불편하고, 자주 소변이 마려워 깨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불면이 단지 ‘피곤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모의 수면 리듬은 단순한 휴식의 문제가 아니라, 아기가 세상을 배워가는 첫 시간표이기 때문이다.

 

임신 20주가 넘으면 태아의 뇌파에서도 수면과 각성이 교차하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임신 후반기에는 렘(REM) 수면과 비렘(NREM) 수면이 번갈아 나타나며, 놀랍게도 그 리듬은 엄마의 생활과 거의 발을 맞춘다. 낮에 엄마가 움직이면 태아의 심장도 조금 더 빠르게 뛰고, 엄마가 누워 쉬면 아기의 움직임도 잦아든다. 자궁 속에서도 이미 ‘낮과 밤’을 배우는 셈이다.

 

수면 중 분비되는 멜라토닌은 엄마의 몸을 넘어 태반을 통과한다. 밤이 되면 이 호르몬이 늘어나고, 낮에는 줄어드는 단순한 변화가 태아에게는 세상의 규칙으로 새겨진다. 반대로 밤늦게까지 깨어 스마트폰을 보거나, 불을 켠 채 생활하면 이 리듬은 흐트러진다. 엄마의 불면이 아기에게는 세상이 뒤집힌 신호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임신 중 수면의 질이 낮았던 산모의 아이가 태어난 뒤 밤낮이 바뀐 듯 뒤척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태아에게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수면은 뇌가 자라나는 시간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이 시기 아기는 엄마의 심장 박동과 혈류의 소리를 들으며 자극을 받는다. 말하자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리듬’을 배우는 중이다.

 

엄마의 잠이 얕아지면 아기의 생체리듬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깊은 잠이 줄면 혈류와 산소 공급이 달라지고, 몸의 리듬이 깨진다. 이런 변화는 단지 ‘밤을 새웠다’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불안하다는 신호를 아기는 그 작은 몸으로 먼저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재택근무와 스마트폰 덕분에 밤이 길어진 시대다. 콘텐츠는 새벽에도 멈추지 않고, 불빛은 방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임신 중만큼은 이 밤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빛에 예민하다. 밤에도 조명이 환하면 ‘밤’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낮에도 커튼을 친 채 있으면 ‘낮’의 활력이 줄어든다. 엄마가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면, 태아는 그 리듬을 고스란히 따라 배운다. 출생 후에도 밤에 더 자주 깨거나 낮밤이 뒤바뀌는 아이들이 있는 이유다.

 

잠은 밤에만 오는 게 아니다. 임신 중 짧은 낮잠은 스트레스를 풀고 면역력을 높인다. 낮 1시에서 3시 사이, 스무 분쯤 눈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몸이 다시 균형을 찾는다. 짧은 낮잠은 피로를 덜어주는 것을 넘어, 태아의 뇌가 안정적으로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는 일이다. 반대로 오래 자는 낮잠은 밤의 리듬을 망칠 수 있다. 짧고 깊게 자는 것, 그것이 숙면의 기술이자 태교의 기본이다.

 

태교에서 수면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좋은 음악보다, 비싼 영양제보다, 우선은 ‘잠’이 먼저다. 잘 자는 것은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리듬을 세우는 일이다. 실내온도는 18~22도 정도가 좋고, 조명은 은은해야 한다. 자기 전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명상, 따뜻한 족욕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전자기기는 잠의 가장 큰 방해꾼이다. 잠들기 한 시간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작은 결심 하나가 아기에게 ‘세상은 평온하다’는 신호가 된다.

 

결국 태교의 본질은 리듬이다. 몸의 리듬, 낮과 밤의 리듬, 그리고 엄마와 아기의 리듬이 맞춰질 때 건강한 생명이 자란다. 태아는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리듬을 배우고, 엄마의 호흡 속에서 세상의 속도를 익힌다. 엄마가 깊이 잠드는 시간은 단지 피로를 푸는 시간이 아니라, 세상과의 첫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