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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과학태교/호르몬 혁명 속에서 감정을 다스리다

 

 

용인신문 | 임신 중 감정의 파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괜히 울컥하고,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또 그 뒤에 ‘내가 왜 이럴까’ 하며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뇌의 생리적 반응이다. 임신 초기의 뇌는 말 그대로 호르몬의 폭풍 속에 놓여 있다.

 

임신이 시작되면 여성의 몸에서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동시에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흔들리며, 뇌의 감정조절 회로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 결과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고, 웃다가도 울고, 한마디 말에 상처받는다.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신경화학적 반응이다.

 

임신 중 감정 기복을 ‘의지력의 부족’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본인 스스로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내가 나를 못 다스리나” 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관찰해야 할 대상이다. 뇌는 지금 새로운 생명을 품기 위해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 중이니까 말이다. 감정의 경보장치격인 편도체는 더욱 민감해지고, 전두엽의 판단 기능은 잠시 휴식 모드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 몸이 새 생명을 만들기 위해 재설계되는 과정에서 감정의 리듬 또한 바뀌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임신 중 감정 변화는 ‘엄마가 된다는 신호’다. 신경학적으로 보면, 임신을 하게 되면 공감능력과 돌봄의 회로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이기주의가 아닌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한층 민감해진다. 자식을 키우기 위한 뇌의 준비운동이라 할 만하다. 엄마가 예민해지는 건 태어날 아기를 안전하게 키우려는 모성 본능의 자연스러운 설계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폭주를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건 ‘억누르지 말되,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면, 오히려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져 혈압과 심박수에 악영향을 준다. 반대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거나, 일기나 명상으로 기록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안정되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매일 감정 일기를 쓰는 임신부는 그렇지 않은 임신부보다 우울감과 불안지수가 현저히 낮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는 행위’는 감정의 덩어리를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언어화된 감정은 뇌의 전두엽으로 옮겨가며 논리적 사고의 통제를 받게 된다. 즉, 감정을 표현할수록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명상과 호흡도 마찬가지다. 단 10분의 깊은 호흡은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되찾고, 과도하게 활성화된 편도체를 진정시킨다. 산책 역시 뛰어난 감정 안정제다. 햇빛은 세로토닌 분비를 돕고, 걷는 리듬은 불안한 마음의 진동수를 맞춰준다.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핵심은 ‘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순환시키는 것’이다.

 

한 산모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임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감정 일기를 썼다고 한다. 아기에게 들려주는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로 글을 쓴 것이다. 단순한 하루의 감정이 아니라, 아이를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훗날 아이가 자라 엄마의 산모일기를 읽게 된다면, 그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히 여겨졌는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태교란 단지 좋은 음악을 듣고, 예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 또한 태교의 일부다. 엄마가 될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돌보는 법을 배우는 순간, 아기 역시 안정된 자궁의 리듬을 배운다. 실제로 태아의 심박은 엄마의 호흡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엄마가 긴장하면 태아의 심박이 빨라지고, 엄마가 편안하면 태아의 리듬도 부드러워진다.

 

임신은 생명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감정의 재구성이다. 엄마의 뇌는 아기를 품음으로써 새로운 감정 회로를 짜게 된다. 예로부터 자식을 낳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했던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