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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의 과학태교
입덧의 비밀: 태아를 지키는 몸의 지혜

 

용인신문 | 임신 중 입덧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의학적으로 오히려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임신 6~12주는 태아의 장기가 만들어지는 가장 민감한 시기다. 이때 아주 작은 양의 독성 물질이나 세균도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기에, 엄마 몸은 후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기름기나 비린내를 견디지 못하게 하며, 위험할 수 있는 음식은 아예 넘기지 못하게 만든다. 입덧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은 hCG와 에스트로겐 같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에 의한 것이지만, 사실은 태아를 위한 인체의 방어시스템인 것이다. 그래서 임신부에게 나타나는 ‘못 먹는 증상’은 몸이 약해진 신호가 아니라,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매우 정교한 생리 반응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부는 태아를 위해 잘 먹어야 한다. 이는 ‘맛의 태교’와 묘하게 이어진다.

 

태아는 엄마가 먹는 모든 음식의 흔적을 양수를 통해 경험한다. 양수는 태아가 하루에도 수십 번 삼키는 액체다. 엄마가 먹는 음식의 향이 양수 속에 배어들고, 태아는 그 향이 섞인 미묘한 맛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태아는 단순히 성장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자궁 속에서 ‘첫 번째 미각 기억’을 시작하고 있다.

 

태아의 미각은 임신 8주부터 형성되어서 14주가 지나면 단맛과 쓴맛, 신맛을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 활성화된다. 태아는 배 속에서 엄마가 먹는 음식의 문화와 리듬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생후 첫 이유식을 줄 때 어떤 아기들은 당근죽을 잘 먹고, 어떤 아기들은 시금치죽도 잘 먹는다는 차이가 바로 임신부 시절에 먹었던 맛과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 산모가 다양하게 먹은 집 아이가 새로운 맛을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임신부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정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다양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먹으면 된다. 단,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으면 태아는 단조로운 맛만 배운다. 그러면 이유식 시기에 새로운 재료를 거부할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제철 채소, 다양한 과일, 견과류, 해산물, 적당한 향신료를 섞어 먹으면 태아는 “새로운 맛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각”을 익힌다. 엄마의 식단이 넓어질수록 태아의 미각 세계도 넓어진다는 뜻이다.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엄마의 식사 분위기다. 급하게 먹고,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식사를 하면 엄마의 코르티솔이 증가한다. 이 호르몬은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고, 아기는 식사 시간의 리듬을 ‘불안한 감각’으로 기억한다. 반대로 엄마가 여유 있게 식사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태아의 심박도가 안정된다. 한 끼의 분위기까지도 태아의 생리 반응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어떤 임신부가 열 달 내내 거의 못 먹을 정도로 입덧이 심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태아는 놀라울 만큼 잘 자란다. 비밀은 태반에 있다. 태반은 엄마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 미네랄 산소등을 우선적으로 태아에게 전해주도록 작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간과 근육, 지방, 뼈에 저장된 영양과 혈액 속의 포도당과 아미노산, 지방산이 모두 태반을 통해 아기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입덧이 심해서 못 먹은 임신부는 살이 빠졌는데 태아는 잘 놀고 잘 자라고 있는 일이 흔하다. 수십 년 전 보릿고개 시절에도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놀라운 태반의 선택과 집중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