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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의 과학태교-16
자식은 부모를 닮지만, 부모만 닮지는 않는다

아이는 친가·외가 증조부모
형질까지도 함께 물려받아

 

용인신문 | 언제나 늘 궁금하다. 배 속의 아기는 누구를 닮았을까. “임신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예비엄마는 축복과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키 작은 나를 닮으면 어쩌나, 공부는 잘할까, 체력은 약하지 않을까. 부모는 늘 자신의 장점은 물려주고, 단점은 건너뛰길 바란다. 하지만 유전은 그런 식으로 계산되는 제도가 아니다. 바람이 불 듯, 예고 없이 섞이고 흩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다만 부모만 닮지는 않는다. 아이는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조부모, 때로는 증조부모의 형질까지 함께 물려받는다. 키와 얼굴, 체질과 성격, 학습 능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특징은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수십, 수백 개의 유전자 조합으로 결정된다. 이 유전자들은 세대를 건너뛰며 잠들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한 집안에서 유독 키가 크거나,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거나, 숫자 앞에서 유난히 강한 아이가 등장한다. 선대에 묻혀 있던 가능성이 아이의 몸에서 다시 깨어나는 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과거와 미래를 함께 품고 세상에 나온다.

 

흔히 “자식의 지능은 엄마를 닮는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는 절반쯤의 과학과, 절반쯤의 오해가 섞여 있다. 지능과 연관된 일부 유전자가 X염색체에 위치하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아이는 X염색체를 어머니에게서만 받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엄마 쪽 유전자의 영향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예로부터 ‘똑똑한 며느리’를 중시하던 관습에도 이런 직관이 깔려 있었다. 아들을 낳으면 X는 오직 엄마 몫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관찰도 있다. 지적으로 뛰어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딸이 아들보다 학습 성취가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 XX염색체를 가진 딸이 지능 관련 유전자의 다양한 조합을 확보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것을 두고 “지능은 엄마가 결정한다”고 단정하는 순간, 과학은 신화로 바뀐다.

 

지능은 특정 염색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은 다유전자적 요소와 성장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다. 인간의 뇌는 출생 이후에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고, 연결되고, 다시 정리된다. 특히 전두엽과 해마를 중심으로 한 고차 인지 기능은 유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치며 계속해서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DNA)는 설계도에 가깝다. 실제로 어떤 건물이 세워질지는, 그 설계도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후성유전학이 화제다. 유전자는 변하지 않지만, 그 유전자가 언제, 얼마나 강하게 작동할지는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수면과 영양, 신체 활동, 정서적 안정, 부모와의 상호작용, 스트레스 노출 여부가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끈다.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어떤 아이는 잠재력이 활짝 피고, 어떤 아이는 충분히 펼쳐지지 못한다. 그래서 의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유전은 가능성을 정하고, 환경은 결과를 만든다.

 

그렇다고 부모의 어깨에 과도한 책임을 얹을 필요는 없다. 어느 집이라도 완벽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뇌가 성장하는 동안, 안전하게 반복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배 속의 아기는 누구를 닮았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이는 과거를 닮고, 현재에서 자라며, 미래로 향한다. 그 여정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바로 부모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식은 이미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