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임신이라는 건 참 이상한 세계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음식이 갑자기 마음에 콕 박히고, TV에서 스쳐 지나간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며 “저거… 나 지금 먹어야 할 것 같은데?”라는 묘한 생각이 든다. 어떤 임신부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아보카도 샌드위치가 갑자기 떠오르고, 어떤 임신부는 카페에서 흘렀던 시나몬 향이 갑자기 너무 그리워져 남편을 끌고 나가기도 한다.
임신이 시작되면 몸은 더 이상 ‘엄마 중심’이 아니다. 엄마 허락도 없이 슬그머니 ‘아기 위주 시스템’으로 넘어간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코와 혀다. 후각도 미각도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지고, 사소한 냄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이 감각들이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취향’을 무시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몸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미안한데 지금은 네 입맛보다 아기가 더 중요해”라고. 그래서 평생 싫어하던 음식을 갑자기 잘 먹게 되고,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이 이상하게 끌리기도 한다.
여기에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사람의 뇌는 실제로 먹어보지 않아도 ‘맛 이미지’를 저장해둔다. TV에서 본 음식 장면, 친구가 맛있게 먹던 모습, 길을 지나며 맡았던 냄새, 음식 사진 한 장, 누군가의 “그거 정말 맛있어”라는 말 한마디까지도 작은 씨앗처럼 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임신으로 감각 회로가 민감해지면 이 씨앗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이야!” 하고 싹을 틔운다. 그래서 이름도 모르던 음식이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고, 심지어 먹어본 적도 없는데도 익숙한 맛처럼 강렬하게 끌리는 것이다.
임신 중 감정은 평소의 두세 배쯤 더 섬세해진다. 음식은 감정을 건드리는 자극 중 가장 강력한 요소라서 한 번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 맛을 머릿속에서 계속 재현한다. 마트에서 스친 빵 냄새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고, 누구든 예쁘게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먹는 모습만 봐도 갑자기 삶의 목표처럼 느껴지고, 밤마다 음식 사진만 모아보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도 온다. 이런 변화는 모두 자연스럽고,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몸과 뇌가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아주 성실하게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적으로도 임신은 뇌가 재설계되는 시기라고 한다. 감정 회로, 보상 회로, 감각 회로가 모두 민감해지고, 기존 취향이 사라지고 새로운 취향이 생기는 일이 지극히 흔하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변화는 출산 후 10년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임신 중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이 당기는 현상’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과정에서 몸이 보내는 매우 자연스럽고 지적인 신호다.
태교는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클래식을 틀어놓고 하루를 의식처럼 보내지 않아도 된다. 밥 앞에 앉아 ‘내 몸이 지금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잠시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태교다. 무엇보다 이때 떠오르는 음식들이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아기와의 첫 번째 대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