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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그의 인생은 우리의 교통수단 발전사

건강과 환경사랑의 대명사 ‘자전거’의 산증인
삶의 뿌리를 찾아서 / ‘삼천리자전거’ 사장 이호맹(62)씨

   
 
글/조선일보 배한진 기자 | 사진/김호경 기자

# 자전거는 선한 이미지
10여 년 전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끌던 의류 광고 카피. 청순 가련형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이를 본 남성은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맘속으로 들어 왔다”
해당 의류 회사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는 캐주얼 한 광고. 모델도, 설정도, 의상도, 카피도 모두 신선하고 낭만적이다.

요즘도 자전거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추억과 낭만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뿐이랴. 광고에서 자전거는 건강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영화도 그렇다. 영화에서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는 인물은 한결 같이 선한 이미지다. 악당이나 사기꾼은 절대로 자전거를 타고 나오지 않는다.

도시락을 매달고 일터로 떠나는 아버지, 한 보따리 소식을 싣고 오솔길을 달리는 우체부, 총각 선생님을 보고 한 없이 수줍어하는 여고생…. 자전거를 탄 영화 속 인물들은 대체로 선량하기 마련이다.
왜 그럴까?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삼천리자전거’ 사장 이호맹(62)씨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 우연히 시작된 30년 자전거 인생
이씨는 1977년 3월부터 30년간 용인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한 인물이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그는 군 제대 후 화성시 동탄으로 올라와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용인 마평리(마평동)를 지나다가 막걸리 한잔 생각이나 선술집엘 들렀는데, 그 앞 자전거포를 내놓는다는 얘길 듣고 선뜻 계약을 해버린 것이 30년이다.

마평리 ‘용인자전차포’를 운영하다 길이 나면서 건물이 헐리자, 1986년부터는 역북동 지금의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자전거는 욕심 없고 소박한 수단이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자전거다. 능력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으니 욕심이 없고, 비바람을 피할 수 없으니 소박하다. 그래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늘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다. 광고에서 영화에서 자전거가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씨도 그렇다. 그 전에 자전거에 대해 알고 자전거포를 인수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몰랐고, 인수를 한 뒤 3개월간 전 주인과 함께 근무하며 배웠다”고 했다. 계산적이고 욕심 있는 사람에겐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그는 요즘도 가난한 사람이 자전거를 사러 오면 두말 하지 않고 자전거를 내준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가진 돈만 받는단다.

그는 “없는 사람이 자전거를 찾을 땐,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장사는 이익을 봐야 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예외도 있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이씨 입장에서는 새 자전거를 많이 팔면 좋은 것이 당연한데, 그는 “요즘 아이들은 절약정신이 없어 타던 자전거를 잘 버리고, 금방 새 것으로 산다”며 걱정을 했다. 참 자전거 같은 사람이다.
자전거와 함께 한 그의 인생은 우리 교통수단 발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 이젠 자녀와 함께오는 손님들
70~80년대에는 자전거가 지금처럼 완성제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 회사에서 100가지의 부품을 자전거포로 보내면, 이를 조립해 완성품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자전거 일을 배우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1대당 3~4만원 하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 공무원과 경찰, 교사, 농부, 학생 등이 그의 가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용인 전체가 비포장길이었고, 대중교통수단도 발달되지 않아 자전거는 누구에게든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태성학교 대부분의 교직원과 학생이 자전거로 통학을 했고, 시청 공무원이나, 경찰서 직원들에게도 자전거는 필수적인 출퇴근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자전거포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일주일에 70~80대가 팔려나가기도 했단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대중교통의 발전으로 자전거 구매가 하향세를 타더니, IMF를 맞아서는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난 그래도 자전거는 꾸준할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 세상이 더 발전한다고 해도 자전거 만큼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자전거에 대한 믿음. 그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자전거는 늘 인류의 생활 속에 있었다.

발해 시조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에는 ‘자행륜거(自行倫車)’라는 기록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자전거의 일종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레오나르도다빈치가 1490년쯤 작성한 것으로 보여지는 자전거 모형도가 있고, 1642년 건립된 영국의 한 교회 유리창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림이 남아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자전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800년대 이전에도 자전거 형태의 수단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 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자전거가 등장,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자전거가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학생 때 부모 손을 잡고 와 나한테 자전거를 사간 어린아이가, 이제는 자기 자식을 데려와 자전거를 사준다”고 말했다.

# “자전거 애용이 곧 환경사랑”
세계적으로 자전거의 역사가 계속돼 왔듯, 이씨에게도 자전거의 역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레저 인구가 늘면서 다시 자전거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자전거까지 등장했다.

이씨는 “자전거는 앞으로 전망이 매우 밝다”며 “선진국을 봐도 레저용은 물론 교통수단으로도 엄청나게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그가 선호하는 자전거는 어떤 것일까.
그는 “오래된 자전거”라고 즉답을 한다.

“자전거 수명은 7년 정도로 봐요. 물론 관리를 잘 하면 더 탈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7년 정도면 자전거를 바꾼다고 보는 거죠. 요즘은 1년도 안된 자전거를 내다 버리고 새로 사기도 하지만. 그런데 용인에도 20~30년 된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이 있어요. 나한테 사간 자전거죠.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새 자전거를 많이 팔아야 하지만, 난 그런 자전거가 더 좋아요. 그 자전거를 팔 땐 나도 청년이었는데, 이제는 환갑을 훌쩍 넘겼으니. 참 많은 생각이 들죠. 그분들 지금도 나한테 자전거 수리를 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30년 자전거 인생다운 얘기다.

이씨 자신도 자전거 마니아이다. 95년까지 용인시 사이클협회에서 활동을 했고, 요즘도 시간이 나면 자전거를 타고 용인 구석구석을 돈다.

자전거가 너무 좋다 보니, 가지고 있던 승용차도 없애고, 자전거 운반용 트럭만 가지고 있다.
그런 이씨에겐 30년 한결같은 바램이 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맘껏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용인시는 재정도 다른 곳에 비해 괜찮다고 하는데, 시민들이 맘껏 자전거 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자전거 끌고 나가도 걱정이 안 되는 그런 환경요.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이미 대대적인 자전거 타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용인에서도 그런걸 해보면 어떨까요. 꾸준한 자전거 타기는 보약보다 낫다고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