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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閒見古人書(한견고인서)’

-鄕史 박용익 선생을 떠나보낸 후-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맡은 일은 용인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의 회장직이다. 영면하기 한 달전 85주년 3.1절 기념으로 용인문예회관에서 ‘용인지역 3·1운동의 역사적성격’ 이라는 학술세미나를 개최, 용인지역의 항일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하며 끝없는 열정을 토해내시던 향사(鄕史) 박용익(朴鏞益)선생은 두달 후인 2004년 5월 11일 새벽 2시10분 별세했다. 그때가 선생의 나이 74세였다. 용인신문 김종경 편집국장이 2004년 봄날 ‘김종경의 용인이야기’를 통해 당시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썼던 편지글을 다시한번 소개한다.

‘閒見古人書(한견고인서)’
-鄕史 박용익 선생을 떠나보낸 후-
떨어지는 찔레꽃 향에도 질식할 듯한 계절입니다. 박용익 선생님! 아니 박용익 원장님! 며칠 전 석가탄신일에 용인의 어느 고찰을 다녀오다가 불현듯 10여년 넘게 원장님과 함께 다녔던 향토문화유적답사가 생각났습니다.

한동안 제가 용인이야기를 신문에 쓴다며 폼을 잡다가 수개월 동안 절필 아닌 절필을 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기간에는 원장님을 자주 못 뵈었고, 마지막 찾아뵈었을 땐 이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셨지요. 그날 저녁 원장님의 차가운 손을 잡아보고 돌아선지 몇 시간 만인 이튿 날 새벽 부음을 접했습니다.

원장님! 제가 다시 용인의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납니다.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용인문화원장을 지내셨던 당신께 용인의 역사를 깨치고 향토사의 현장을 함께 돌아다니며 배웠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뒤돌아보니 지금 용인신문의 전신이었던 성산신문 창간 시절부터 당신께서는 편집위원과 논설위원을 맡아 동고동락을 했었지요.

특히 용인신문에 마지막 연재를 하셨던 것은 각종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던 마을 어귀의 작은 비문을 비롯해 마을마다 숨어있던 향토사의 맛깔스런 이야기였습니다. 끝내 중간 중간 건강이 여의치 않아 연재를 중단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항일운동기념사업을 추진하셨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는 병마가 되어 결국 홀로 긴 답사를 떠나셨습니다. 그 순간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은 장례일이 돼서야 눈물로 쏟아졌습니다.

이틀간의 저녁시간, 영정을 모신 빈소에서 원장님 생전의 모습을 흑백 필름 돌리듯이 돌려가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용인향토사 연구의 동지들과 후학들은 어설픈 영결식을 준비했고, 정고을 선생은 원장님 가시는 마지막 길에 눈물의 진혼무를 추셨습니다. 전날 정 선생은 저와 빈소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주정이었지만, 취할 수 없었습니다.

향토문화창달! 용인신문의 창간정신입니다. 되돌아보니 원장님께서는 용인에서 처음으로 대규모택지개발이 시작됐던 그때 이미 ‘향토문화창달’이라는 말로 지역의 정체성 지키기를 가르치셨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향토사만큼 고리타분한 분야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민족문화와 지역의 정체성이 향토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는 이미 배워 잘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 원삼면 맹리의 홍길동전 저자 허균 선생 가족묘역에 있는 ‘난설헌’시비 생각나시죠? 그 시비에 있는 난설헌의 친필을 친히 여러 장 탁본해서 정성껏 액자에 넣어 지인들에게 선물하셨지요. 아마 지난해에 제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간단한 글귀지요.

‘閒見古人書(한견고인서)’, 굳이 직역을 하자면 “한가로울 때는 옛사람의 글을 읽으라”는 뜻이겠지요. 다시 용인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당신의 마지막 가르침으로 삼으려 합니다. “괜찮겠지요? 원장님?…” 삼가 향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