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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청덕동에서 포은선생의 정신을 되새긴다

名家를 찾아| 영일정씨 주부공파(迎日鄭氏 主簿公派)
주부공 후손들 400년 세거지…숭조정신(崇祖精神) 실천의 귀감

   
 
기흥구 청덕동에 집성촌을 이룬 영일정씨 주부공파 후손들
기흥구 청덕동은 영일정씨 포은공파 주부공계(主簿公系) 후손들의 세거지(世居地)이다. 포은정몽주 선생의 8대손이며 조선 인조 때 광흥창(廣興倉) 주부(主簿)의 관직을 지낸 정충전(鄭忠傳)의 후손들이 400여 년 동안 살아온 곳이다. 최근까지 은둔지처럼 조용하던 청덕동이었는데, 죽전, 동백동지역과 함께 도시개발지역으로 설정되어 개발소음이 심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적하고 안쪽 깊숙이 산자락을 타고 형성된 집단묘원과 재실이 있으니, 바로 영일정씨 포은공파 주부공계 후손들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청덕동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영일정씨 주부공파 세거비가 눈에 들어온다. 원래의 청덕동 마을입구 느티나무 옆에 세워져 있던 것을 2007년 5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세거비 전면에는 “迎日鄭氏圃隱公後孫主簿公派世居之阡”이라 새겼다. 비문은 용인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조종익씨가 지었다. 개발 이전까지는 이곳부터 묘역·재실까지의 광활한 땅이 모두 이 가문의 세거지였다고 한다. 400년 동안, 이 넓은 터에서 살아왔음에도 다른 이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뒤쪽에 위치한 이곳은 교통이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주부공 정충전의 묘소가 포은선생의 묘역에 있고, 후손들의 묘소만 별도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반대로 이곳의 교통이 더 편리하게 되었다.

# 영일정씨 포은공파 주부공 종친회의 파조인 정충전(鄭忠傳)
주부공 정충전은 포은선생의 8세손이다. 조선 명종 22년(丁卯, 1567) 사과공(司果公) 림(霖)의 둘째 아들로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관직에 오른 뒤부터는 지금의 서울인 한양에 이거하였다. 주부공의 자(子)는 선술(善述)이요, 호(號)는 구정(駒亭)이다. 묘소는 포은선생 묘소 우측 50미터 능선, 5대조 설곡(雪谷) 정보(鄭保)의 묘소 상단에 있다.
주부공은 1642년 인조 2년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종묘직장(宗廟直長, 종7품)에서 호조의 광흥창(廣興倉) 주부(主簿, 종6품)로 2계급 특진되었다. 죽은 뒤에 통훈대부(通訓大夫) 군기시(軍器寺) 부정(副正, 정3품)으로 추증(追贈)되었다. 부인으로 숙인(淑人) 남양홍씨(南陽洪氏)와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있는데, 남양홍씨에게는 윤(倫) 필 교(僑) 협(俠) 4형제가 있다. 전주이씨에게는 현(俔) 한 분이 있다.
주부공 정충전의 이력은 널리 알려진 바 없어 자세하지 않다. 단지, 족보의 기록을 통해 광흥창 주부를 역임하였다는 사실과 사후 통훈대부로 추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경기도 관찰사였던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쓴 「충렬서원강당기(忠烈書院講堂記)」를 통해 문중의 대소사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기문을 보면, 1605년 (선조 38년) 포은선생 묘소에 참배하였을 때 포은 선생과 정암 조광조선생의 향사를 이어오던 사우(祠宇: 竹田書院)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배향(配享)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주부공 정충전이 현감 정종선(鄭從善), 진사 이시형(李時亨) 등과 함께 관찰사에게 충렬서원(忠烈書院) 건립에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주부공은 영일정씨 종사(宗事)에 깊숙하게 관여하였던 것 같다.
주부공의 부인인 숙인 남양홍씨는 병자호란(丙子胡亂) 후 청나라의 요구로 소현세자(昭顯世子), 봉림대군(鳳林大君)과 함께 볼모로 끌려 갈 때 압록강에서 모래 세 말(三斗)를 치마폭에 숨겨 가지고 가서 거처하는 자리 위에 펼쳐놓고 생활하다가 3년 후에 귀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숙인 남양홍씨가 양반가의 부인으로서 오랑캐 땅을 밟지 않겠다는 충절(忠節)과 정절(貞節)을 지키겠다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청덕동에 영면하고 있는 주부공의 후손들
영일정씨 포은공파 주부공종친회의 파조인 정충전의 묘소 는 모현면 능원리에 위치한 포은정몽주 선생의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청덕동 묘역에 있는 묘소들은 주부공 정충전의 부인인 남양홍씨와 그 후손들의 묘소이다. 주부공의 아들인 윤(倫) 필 교(僑) 협(俠) 4형제의 묘역도 청덕동에 분산되어 있다.
재실인 청덕재(淸德齋) 상단에 있는 주부공 종친회 묘원(墓苑)은 2002년에 아파트 단지로 편입된 구역 내에 있던 선조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종인(宗人)들이 사후영면(死後永眠) 할 수 있는 장소로 180기의 납골묘를 조성한 것이다.

# 청덕재(淸德齋)
청덕재(淸德齋)는 정충전과 숙인 남양홍씨 그리고 그 후손들의 시제를 지내는 재실(齋室)이다. 구조는 전사청(典祀廳) 165m², 문동(門棟) 70m² 그리고 동문과 서문으로 되어 있다. 원래 청덕재는 청덕동 312번지에 있었는데 청덕동의 대부분이 2002년 아파트 단지로 편입되어 이곳으로 이전 건축한 것이다.
조선시대 인조때 호조 광흥창 주부 벼슬을 한 포은 정몽주 선생의 8세손인 정충전(鄭忠傳)을 비롯하여 후손들의 시제를 지내는 곳이다. 영일정씨 포은공 후손 주부공파 종인들의 세거지인 구성면 청덕동에 후손들의 뜻을 모아 1989년도에 건립하였는데, 2004년 이 일대가 아파트 단지로 편입됨으로 인하여 인근 종중산으로 이전 건축하였다.

# 숭조정신(崇祖精神) 실천의 귀감인 주부공파 문중사람들
주부공 정충전이 출생한지 올해로 440년이 되었다.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1천여명이 오늘날 포은선생과 주부공의 정신을 계승하여 생활하고 있다. 주부공 정충전이 세상에 남긴 행적이 많으련만 지나간 일들을 살피기 어려워 아쉬운 마음 감출 길 없다고 한탄한다.
주부공 종친회는 주부공 선조를 숭상하고 종친간의 화목번영과 후진육성을 도모하며 사회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일정씨 포은공파 문중에서 가장 귀감이 되고 있다고 공인한다.
주부공종친회는 회장 1일, 부회장 4인, 이사 12인 이내, 감사 2인, 약간의 고문을 두게 되어 있으며 52인의 대의원이 종친회를 대표하고 있다.
초대회장은 주부공 11세손 정귀용씨가 맡았으며 현재는 정성용씨가 이끌어 오고 있다.
영일정씨 포은공파 주부공 종친회는 수익사업으로 1987년 광명시에 빌딩을 건립하여 임대사업을 하고 있으며 수익금으로 경로위로사업, 장학사업 등을 실천하고 있다. 영일정씨 포은공파 주부공종친회와 청덕동의 자세한 유래는 홈페이지 (www.youngiljubu.com)를 방문하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