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1 (월)

  • 구름많음동두천 21.8℃
  • 맑음강릉 22.8℃
  • 박무서울 22.3℃
  • 박무대전 21.8℃
  • 구름많음대구 24.6℃
  • 흐림울산 23.4℃
  • 흐림광주 22.7℃
  • 박무부산 22.6℃
  • 흐림고창 22.6℃
  • 흐림제주 25.0℃
  • 구름많음강화 21.1℃
  • 맑음보은 20.4℃
  • 구름많음금산 21.8℃
  • 구름많음강진군 23.2℃
  • 구름많음경주시 23.2℃
  • 흐림거제 22.3℃
기상청 제공

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나는 한국사람이다”

백남준 선생의 영원한 짝 구보다시게코
Close-up | 고 백남준 미망인 구보다 시게코

   
 
“백남준은 부잣집 딸을 제일 싫어했어요.”
“만날 철부지 같았지요. 나를 왜 좋아했냐고 물으면 촌스러워서 그렇다고 했어요.”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였던 고 백남준 선생의 미망인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는 자신이 촌스러워서 백남준 선생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시게코의 말에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베리 나이스, 원더풀!”
지난 7월 27일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박물관 옆에 지어지고 있는 ‘남준백 아트센터’(백남준 미술관) 현장을 찾은 시게코는 연신 감탄을 외쳤다.
현장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생전에 때려 부수고 먹기까지 했다는 피아노 형상의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미술관이 더 빨리 진척됐으면 좋겠어요. 돌아간 백남준은 내년 1월 자신의 2주기 추모행사 때 미술관을 둘러보길 원할 거예요.”
미망인의 간절한 마음.
구보타 시게코는 KBS가 창사 8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마련한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행사에 초청 인사로 한국을 방문했다.
7월 26일 KBS 신관 특별전시장에서 있은 개막행사에 참석한 시게코는 생전 백남준 선생의 다양한 행위를 재현한 백남준 오마주, 미디어 퍼포먼스, 임동창의 백남준을 위한 헌정 무대,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전시 등을 대하며 눈물을 흘렸다.
생전의 백남준처럼 남방에 헐렁한 멜방 바지를 입고 바이올린을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땅에 끌리는 바이올린’을 볼 때 남편 생각이 났다고 했다.
백남준이 평소 대중성과 재미를 예술의 핵심 요소로 이야기 했다지만, 그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한판 난장을 즐겼는지 모르지만 미망인만큼은 그날 예술을 재미로 즐길 수 없었다.
임동창의 아리랑 연주를 들을 때 남편 생각이 또 났다.
“남편은 생전에 아리랑을 즐겨서 연주했어요.”
백남준 선생의 생일이 7월 20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의 행사가 마치 남편의 생일 세러모니 같았다고 했다.
“젊은 시절 세계를 누비다가 이제야 겨우 한국에 돌아왔어요.”
백남준 선생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이곳 저곳에 살면서 그의 독특한 개성을 미술 작품에 투영하며 살아왔다.
심각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제하고 자기 중심적인 아이디어에서 작품을 생산한 백남준.
시게코는 남편의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거대한 ‘거북’을 꼽았다.
‘장수의 상징 거북’은 백남준이 거북선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이다.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이긴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면서 거북선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속 깊은 곳에 애국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는 수원백씨에요. 가족이 모두 하꾸다로 창씨개명을 했는데 백남준만은 하지 않았어요. 아리랑을 즐겨 연주 했구요.”

# 시게코 뉴욕서 백남준 추모전
시게코 역시 일본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다.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의 대표적 멤버이기도 하다.
백남준과 서로 비평도 하고 도움도 주고 받으면서 꾸준하게 아티스트로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왔다.
시게코는 9월 6일 미국 뉴욕의 마야 스텐달 갤러리에서 한달 반 동안 전시회를 갖는다.
전시회 제목은 ‘백남준과의 삶’(My Life with Nam June Paik)이다. 그는 이번에 백남준과의 생활과 정신적 교류를 담은 비디오 설치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올해 제작된 두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백남준I’이라는 작품에서 시게코는 쇠파이프로 사람 모양을 만든 뒤 머리, 가슴, 양 팔다리 부분에 비디오 모니터를 설치하고 이들 화면을 통해 백남준의 생전의 활동 장면을 보여주게 된다.
이와 함께 전시실 안에 16개의 모니터를 달아놓고 여러 해에 걸쳐 촬영한 백씨의 마지막 모습도 상영한다.
또 백남준 선생이 타계하기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젊고 건강한 여자 간호사들의 치료 도움을 받으며 즐거워 하던 모습도 작품으로 선보인다. 시게코는 남편의 치료와 그의 치료사들을 위해 ‘성적인 치료(Sexual Healing)’라는 음악으로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었다.

# 한국미술관에서 가질 전시회
시게코는 뉴욕전시에 이어 오는 2008년 기흥구 상갈동에 건립중인 ‘남준백 아트센터’ 개관식 때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한국미술관에서 자신의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시게코는 한국미술관에서 가질 자신의 행사 제목을 ‘오마주 퍼 남준백’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시게코가 한국미술관에서의 전시 기획을 한 것은 한국미술관 김윤순 관장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다.
1984년 35년만에 처음 서울에 온 백남준 선생이 당시 종로구 가회동에 자리한 한국미술관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미술관은 미술아카데미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김익영 선생이 지도하는 도예반에 백남준 선생의 누님 백영득이 있었다.
그때 부인 구보다 시게코가 한국말을 못하자 백남준 선생은 일본말을 잘 하는 김 관장과 가까이 지내게 소개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을 김 관장과 친하게 지내온 시게코는 내년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백남준 미술관이 용인으로 오게 된 것도 한국미술관 김윤순 관장의 힘이다.
평소 김관장과 친하게 지내던 백남준이 경기도에서의 미술관 건립을 제안받자 김 관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파주 헤이리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나 김 관장은 호암미술관, 한국민속촌, 경기도박물관, 유네스코에 등재된 화성 등 문화적인 띠가 두터운 용인이 적격이라고 추천했다. 그러자 백남준은 용인의 문화적인 미래를 확신하고 용인으로 정했다.
“용인에서 백남준 미술관과 주변 자원을 연결해 종합적인 계획을 활성화 시키면 용인시가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재정에 도움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시게코는 백남준 미술관이 용인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만난지 14년만에 결혼
한국미술관에서 조촐한 다과와 김밥을 들면서 나누는 시게코와의 대화에서 시게코는 시종 남편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았다.
백남준이 생전에 어떤 남편이었냐고 묻자 “예술가지 남편으로서는 아니다”며 호탕히 웃었다. 그러나 “한 세기에 한번 나오는 천재”라는 존경의 말을 잊지 않았다.
김윤순 관장이 시게코에게 “백남준이 생전에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작품에 시게코의 영향이 많다고 하더라”고 하자 시게코는 “남편이 착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라며 백남준은 머리가 비상한 천재였다고 다시 한번 천재적인 비디오아티스트인 남편을 회상했다.
시게코는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의 짤막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백남준과 결혼하던 당시는 백남준이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태여서 축하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미국서 결혼하는데 사람도 없고 꽃도 없었지요. 친구 남편이 결혼을 증인해 줬는데, 장님이었던 그는 증인할 때 꽃 냄새가 좋았다고 말했어요. 사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죠. 코미디 같았어요. 우린 결혼식 후 중국집에 가서 중국음식을 먹었어요.”
시게코는 1963년 도쿄 소게츠 콘서트 홀에서 처음 백남준 선생을 봤다. 그리고 비스바덴 콘서트에서 또 보게 됐다. 비스바덴 콘서트에서는 백남준 선생이 피아노를 부수고 먹기까지 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시게코는 순간 ‘저 사람은 내꺼다’라고 생각했고, 백남준 선생의 천재성에 반해 14년을 쫓아다닌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 100주년 때인 2012년 존 케이지를 위한 큰 음악회를 계획했었어요. 존 케이지 100세 때 연주해 주려고 했는데 죽었으니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 남준백 아트센터에서 존 케이지를 위한 백남준의 염원을 풀어줬으면 해요.”
존 케이지가 남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라며 백남준의 염원을 풀어주길 바라는 그녀는 봉은사에 모셔져 있는 백남준 선생의 유해도 ‘남준백 아트센터’로 옮겨지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그녀 또한 사후에 백남준과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용인시민증을 수여한 그녀는 일본 국제문화예술진흥회에서 그녀에 대한 예우를 해주겠다는 말을 단호히 거절하며 “나는 한국사람이다”라고 말한 백남준 선생의 영원한 짝.
“시게짱, 나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소.”
시게코의 귓전에는 생전 백남준 선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