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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대를 잇는 막걸리…정성이 익어간다

삶의 뿌리를 찾아서 | 용인의 맛 원삼막걸리 김충원(79)옹

   
 
항아리에서 보글보글대는 숙성의 시간이 곧 인생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와 함께 하며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탁주 또는 탁배기로도 불리는 막걸리. 막걸리에는 이름도 많다. 희다해서 백주, 탁해서 탁주, 가가호호 담가 먹지 않는 집이 없어서 가주, 농사 지을 때 새참이라 해서 농주, 제사지낼 때 제상에 올린다 해서 제주, 백성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고 해서 향주,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고 해서 국주.
용인시를 대표하는 막걸리는 백암양조장을 비롯, 원삼양조장, 지난 2002년에 도시계획에 밀려난 역삼동 용인주조와 합쳐진 포곡읍 금어리 용인합동양조장, 수지합동양조장 등 4개의 양조장이 용인의 막걸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충원(79)옹과 아들인 김용진(50)씨가 25년째 제조하고 있는 원삼막걸리는 매니아층까지 생길 정도로 용인의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 막걸리와 함께 한 37년 인생
과천에서 태어난 김충원(79)옹은 1929년생이다. 군대를 다녀와서 정미소와 목장일을 근 30년간 돌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막걸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1년, 용인시 남사면에서 남사양조장을 형(고 김용희)과 함께 운영하면서이다. 과천에서 출퇴근을 하던 1970년대 후반 이동·남사·양지·모현지역을 아우르는 ‘용인합동양조장’을 설립하게 된다. 그런 후 용인으로 이사해 1983년 원삼에서 원삼막걸리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막걸리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원삼 양조장 건물이 있었으니 원삼 막걸리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100년 세월은 족히 되지만 맛의 전수까지 이뤄졌던 것이 아니었다.
김충원옹의 막걸리 인생을 1971년 남사양조장에서부터 따진다면 37년을 넘기고 있는 셈이지만 원삼면 고당리 원삼면사무소 근처에 소재해 있는 원삼막걸리로만 보더라도 25년의 인생인 셈이다.
83년 김충원옹이 원삼 막걸리를 인수했을때만해도 막걸리 인기가 꽤 있었던때라 직원도 너댓명 두고 일했었다. 그러나 맥주와 소주가 막걸리 시장을 잠식해 오면서 두 부자 중심의 가족 운영체제로 축소됐다.
“그때는 막걸리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농번기철이면 하루에만 100말이나 팔았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논일을 대부분 인부들을 사서 쓰거나 동네사람들이 품앗이를 하던 때라 막걸리는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지. 2명이 일하나 3명이 일하나 막걸리는 1말을 시켰거든. 그땐 요앞에 있던 상회하고 우리 막걸리집은 요즘말로 호황을 누렸던거지. 들밥을 먹고 손모를 내던 때가 좋은 시절이었던거야” 김옹은 옛날 생각이 잠시 났는지 잠시의 정막이 흘렀다.
“80년대 후반이 되자 이양기가 보급되기 시작했어. 그것과 동시에 공교롭게도 그 때부터 막걸리 판매는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지. 들에서 밥을 먹던 시절에서 자장면 배달을 시켜 먹는 시스템으로 바뀐거지. 들밥 재료를 팔던 상회하고 우리 막걸리집은 찬밥신세가 된거야”
그의 말대로 농업부분의 기계화가 농촌의 소비형태를 바꾸는 계기가 된 모양이다. 지금은 하루에 각 점포로 나가는 양이 15말이 될까한다고 말한다.
“여러명이 손모를 내며 막걸리 한사발과 들밥을 먹던 때가 진짜 농사여. 이양기로 심으면 편할지는 몰라도 정이란게 없어. 이양기가 손모보다 정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동네의 한 두군데라도 손모심기의 전통이 이어졌으면 해” 요즘 농촌체험 같은 것도 인기라고 하는데 손모심기 체험같은 것하면 좋겠다고 기자가 말하자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치며 “그것참 좋은 생각이네, 그거 잘되면 막걸리는 꼭 곁들여야 하지. 암~!”

# 원삼막걸리 맛의 비결은 정성
술맛이 좋은면 멀리서도 찾아온다는 속담은 원삼 막걸리를 두고 생겨난 말이 아닐까.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애주가와 대포집 주인들은 어찌어찌 소문을 듣고 원삼 막걸리를 사기 위해 서울, 안양, 이천, 여주, 수원 등 각지에서 거리를 멀다 않고 찾아 온다. 그 유명한 포천막걸리가 들으면 화낼 일이지만 포천에서도 술을 사러 오는 단골도 있다.
그렇다면 원삼 막걸리의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맛좋게 만들려면 정성을 드려야지. 도수도 잘 맞춰야하고. 온도를 잘 맞춰 발효를 잘 시켜야 돼. 밥 짓는 것도 골고루 잘 익혀야 하듯 한 번 볼거 두 번 봐야하는 거야.”
원삼 막걸리는 일일 배달 체계로 운영해 신선도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최고다. 발효된 술이 맛이 좋기 때문에 하루저녁 묵혀서 내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덜 발효된 것을 내보내면 요즘은 바로 냉장고로 들어가기 때문에 술맛이 안난다. 옛날에는 한데에 놔두기 때문에 발효가 지속되 술맛이 점점더 좋아 졌었다.
“무엇보다 항아리가 맛을 결정하는 일등공신이지. 그리고 다른 막걸리처럼 유통기간을 오래 잡는 것은 맛을 잃게 하기 십상이지. 최대한 숙성을 시켜서 보내야 제대로된 맛을 보게 되거든. 그게 원삼막걸리의 진정한 맛이지”
밀가루를 반죽해 익혀서 뜸들이고 퍼서 종균을 넣고 12시간 보따리 쌈을 해 발효시켜 다시 상자에 띄워 이튿날 아침에 털어 항아리에 집어넣고 발효시킨다. 원삼 막걸리는 우유같이 진한게 술빛이 맑다.
“막걸리의 맛은 손맛이고, 정성인 게지! 옛날 소비자는 써도 달아도 시어도 먹었지만 지금은 소비자가 먹어봐서 좋아야 찾기 때문에 맛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담아야 하는 게지, 아이 다루듯 조심 조심 다루고 깨끗한 마음을 담아내야 진정한 맛이 배이게 되는 것이거든.”

# 서민들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원삼막걸리
인터넷으로 원삼막걸리를 검색하다 블로그에 원삼막걸리를 예찬하는 글이 눈에 띤다.
<궂은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사는게 재미 없다 느껴질 때 그냥 아무런 생각도 이유도 달지 말자구요. 그냥 그저 그런거 그 기분 아시나요? 원삼 쌀막걸리 한 잔이면 슬픔도 좌절도 그냥 구-웃이죠. 더러는 이것마져도 호사라고 하실런지요…. 요즈음은 고양이도 쥐를 잡지 않는다는데 저는 막걸리 한잔으로 사치했습지요…. - 네이버 아이디 ‘꽃향유’님의 블로그의 내용 중>
술맛이라면 일가견이 있다는 용인 문인들의 모임때는 어김없이 원삼막걸리 몇 통이 배달된다. 한 잔 들이키며 ‘크어~!’를 한 번 외치니 곧바로 시(詩)가 한 편 읊어 진다.
<어깨 늘여 정 안은 초막 / 누룩 울킨 잘걸리 있다
흰뜨물 세월 담가 / 울렁 넘친 빛바랜 술 사발 / 입가 손털기가 풍류니라.
시큼한 술 지게미 냄새 / 두부 모 싼 신 김치 늘어진 콩나물 / 둥근 술상 물방아 돌고 / 나직한 노랫가락 흥 실어 / 니내 넘나드는 느직한 홀정 / 주모 살짝 감춘 젖가슴 / 바람기 핀 눈웃음 헤프긴 해도 / 진 안주라.
벌컥벌컥 파아 / 사나이 술이 켠다/ 주욱 / 빈 가슴에 술이 찬다. - 이제학시인의 ‘잘걸리’>
또 원삼막걸리는 용인관광마라톤대회에서 주 메뉴가 되어버렸다. 두부와 김치 그리고 원삼막걸리 한 사발이면 수많은 마라토너들의 원기마져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한 마디씩 한다. “이거 어디서 살 수 있죠?”

# 애주가 들이여! 막걸리를 주목하라.
옛날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양조장에 들어서면 술이 익어 가는 향기가 인생마저 빨아 들일 듯 진하디 진하다.
막걸리가 이제는 하향사업으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양조장의 긍지를 갖고 가업을 잇고 있는 양조장 주인들을 보니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오늘은 왠지 술을 마시고 싶다”면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켜 보라! 가슴속 오장육부까지 느껴지는 전통의 맛이 온몸 구석구석을 누비며 말끔히 씻어 줄것이다.
아직도 원삼 막걸리의 걸쭉한 맛을 모르는 애주가들이 많아 보인다. 폭넓게 홍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더욱이 양주와 맥주가 국내 주류 시장을 잠식해 원삼 막걸리의 구수한 맛이 전파되기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전수되고 있는 원삼 막걸리. 비오는 날이면 파전이나 김치전을 부쳐서 원삼막걸리 한사발로 입을 축인다면 그만한 낭만도 없을 것이다. 또 재래시장 한 켠에 앉아 순대 한 접시에 원삼막걸리 한사발이면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보다 행복한 날을 없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