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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Life-go-round”

People | 서양화가 정규리
유망한 젊은 작가 선정돼
장흥아트파크에서 작품활동

   
 
장흥아트파크 403호.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청년 작가 정규리를 만나러 장흥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20여평 규모의 텅빈 직사각형 작업장 안에서 그는 허무와도 같은 흰색의 바탕색을 칠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장흥아트파크는 가나아트 소유의 공간으로, 유망한 젊은 작가로 선정된 작가들만이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옥션에서 활발하게 거래 되는 작가라는 사전 지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도 부담이 컸다.
‘인터뷰 짬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간을 빼앗는다는 미안함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서둘러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작업 시간을 뺏기는 것에 아랑곳 않고 정성껏 답변해 줘서 고마울 뿐이다.
“사실 작품을 그릴 시간이 부족해요.”
그는 서울 강남의 자택에서 매일 이곳 장흥으로 출근해서 그림을 그린다. 작품이 없어서 못 판다니 그가 존경스럽다.

#삶의 관조
38세의 정규리는 전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앳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는 철학적 깊이가 무한해 외모와 연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묵직하다.
그러면서도 화면에 보여지는 그의 작품은 작은 점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작가와의 대화는 모처럼 예술의 묘미에 흠뻑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장르를 나누기가 힘들어요. 묘사나 형태는 구상적인데 내용은 추상적이거든요. 내가 보기에는 추상에 가까워요.”
정규리는 자신의 작품이 구상 형태로 추상을 이야기 한다고 설명해준다. 말 그대로다.
화면 중앙에는 시계나 회전목마, 회전 관람차, 모래시계 등이 놓여있다. 그 주변으로 실제 사물을 묘사한 형체들이 화면에 둥둥 떠다닌다.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는 인물 군과, 빌딩, 나무, 구름 등.
각기 다른 시간대에 있으면서도 같은 시간에서 순회하고 있지만 서로 연결성은 없다. 모든 사물들은 방향성도 없다.
“시계 좌판을 보면 갇혀서 돌고 있어요.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한 시간이 생겨나요. 그림이며 삶 모든 것이 마찬가지에요. 유한한 개체들은 무한한 시간속에서 순환하는 것 같아요. 끝이면서 처음이에요.”
그는 생의 허무를 느끼면서, 그 허무하고 텅 빈 공간에 부유하는, 떠다니는 삶을, 형태를 넣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처럼 돌고 도는 법칙, 즉 윤회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일부러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특이함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내가 보는 세계 그대로를 그릴 뿐이에요.”
작가의 사색이 그대로 화면에 담긴 것이다.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세상, 그가 거쳤던 세상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법칙, 진리 같은 것이죠.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꼈던 공식, 있는 그대로의 그림이에요.”

#시간의 유한성
종교적이지 않다. 기독교 모태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불교 윤회사상과 연결된 듯하지만, 실상은 철학적 사유의 세계에 놓여 있다.
그의 작품은 넓은 화면이 텅 비어 있는 듯 휑한 느낌이다. 형체들이 마치 점들처럼 떠다닌다. 클로즈업 해서 사물을 크게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관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그릴뿐이다.
그렇다고 바탕 화면색이 화려하지도 않다. 한 두가지 색만 칠해진다.
“색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에요. 공간보다는 시간성에 초점을 두기때문에 공간에 집중하게 하지 않는 거에요. 배경화면을 단순화 시키고 있지요.”
요새는 화면을 반으로 나누었다. 세상은 밤 낮처럼 대칭적이다. 순환하면서 거쳐 가는 다른 세계다.
인간이 큐브 안에도 갇혀있다. 큐브 안에서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제 갈길을 가는 화면의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갈 수 없는 한계성에 노출된다.
정규리는 텅빈 공간에서 우리는 볼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벽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존재하는 벽일 뿐이다. 무한한 것 같으나 유한한 세상. 어찌보면 우리는 세상이 무한한 것으로 믿고 싶어 할 뿐이다. 세상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정규리의 말대로 세상은 느끼는 그대로 돌고 돌뿐이다.
당분간 정규리는 이러한 주제에, 진리에 머물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원래 정규리는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그러나 졸업후 서양화로 전환했다. 2001년 파리 국립미술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박사과정중에 있다.
그는 금호미술관, 갤러리 마노, 아트사이드, 인데코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수많은 단체전을 가졌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