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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승

여 승/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지나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우는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망울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인의 개인사가 참 아프고 서럽다. 어느 여인의 개인사가 이보다 더 서러울 수 있을까. 청신한 취냄새가 나는 여승은 이미 늙어 그 모습을 보는 시인이 불경처럼 서러워지는 것이다. 여승은 금점판에서 옥수수를 팔다 어린 딸을 때리며 가을밤 같이차갑고 울던 여인이었다. 꿀 찾아 떠도는 벌처럼 정처없던 남편을 십년이나 기다리는 동안 딸아이는 도라지 꽃 같은 영혼으로 에미를 떠났다. 남편도 딸도 잃은 여인은 산꿩이 슬피 우는 날 절 마당가에서 삭발을 하고는 여승이 된 것이다. 마지막 행에 이르러 비련의 여인이 살아온 날들의 슬픔이 지극하여 목이 멘다. 서러움은 이 땅의 모든 여인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