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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畵像

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 세햇 동안 나를 키운 것은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이는 내 눈에서 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서정주 시인이 드물게 가족사를 시로 쓴 작품이다. 그의 가족사는 눈물겨워 이 시편을 읽을 때마다 목이 멘다. 서정주 시인에게 역사의식이 없다거나 친일 작품이 있다거나 하는 지적은 그의 문학 앞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모든 작품을 역사주의로 재단하는 것도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는 것이다. 형식주의 시각으로 보면 서정주는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일구어낸 빼어난 시인일 뿐이다.

서정주는 이미 스물세 살 때, 사람들이 그의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던 그의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던 뉘우치지 않고 오로지 피 맺힌 시만 쓰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던 시인이다. 자화상은 우리의 핍진한 삶이 어떻게 전개되던 결의에 찬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