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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고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을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데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앳어라 벙어리처럼 하앳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송찬호는 과작의 시인이다. 이번 시집도 9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니 다음 시집을 기다리려면 또 족히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들은 빛난다. 이 말은 그의 시편들이 그를 기다리던 독자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독자들을 설레이게 한다는 뜻이다. <찔레꽃>은 서사가 도드라지는 시편이다. 사랑하던 연인이 시집 가던 날 아침 가보라 하던 찔레나무 아래에는 연인의 편지가 흰빛 사기 사발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다. 차마 다 읽지 못한 편지, 눈썹을 밀면서 잊고자 했던 연인은 세월 속에 희미하게 잊혀졌지만 벙어리처럼 하얀 찔레꽃 덤불 속에는 아직도 오월의 뱀의 모습으로 슬픈 남자가 숨어 있는 것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