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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는 나와 함께

시와풍경사이/| 감동이 있는 시 감상-⑩

정희성

나 떠나는 날 내 시도 데리고 가리
시는 언어구조물이라지만
서울의 아파트 같은 콘크리트 건물과는 달라서
그 속에 들어가 즐겁게 혹은 서럽게 살다가
아무도 없는 방안 훠이 한번 둘러보고
침대에 몸을 눕힌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그렇게 오랜 세월 흘러도 흉물스럽지는 않으리
나 죽고 나면 내 시 읽을 사람 없고
평생 두고 지은 언어구조물은 무너져
아무도 들어가 사는 이 없고
기쁨이나 슬픔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남았다가
모래처럼 흩어지고 혹은 허공 속에 증발되어
자연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테니까


정희성 시인은 80년대를 격정적으로 건너온 시인이다. 낙관적 전망이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아 그는 아직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있다고 선언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연에 오래 머문다.
그 자신 말고도 그가 평생 써온 시편들도 그와 함께 자연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을 설파하고 있는 정희성 시인은, 그가 세상 다 마치고 “나 떠나는 날 내 시도 데리고 가리”라고 노래 한다. 그의 시편들은 언어로 지은 집들이어서 그 속에 들어가 즐겁게 혹은 서럽게 살다가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오랜 세월을 흘려보내도 시인의 죽음이므로 흉물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 한다. 그가 죽고 나면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을 시편들이라고 허무함을 노래하지만 그의 사후에도 그의 시편들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의 시편들이 지니고 있는 기쁨이나 슬픔의 형용할 수 없는 표정들은 바로 독자들의 표정이고 고뇌이기 때문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