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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東行脚

嶺東行脚Ⅰ/김명인

원양선을 타다 온 친구는
上席을 잡아 울릉도로 떠난다
번 돈도 없이
먼 바다에서 끌고 온 그의 주정
뜰에는 장다리꽃들만 떨기로 피어
흔들리지 않아도 먼 수평선을 흔들고 있다

왜 그리울까
올해나 작년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보다
더 생생한 우리들의 가난
그 그리움 밖으로
낚시를 물고 청년 하나가
삼각파도 위에 솟구쳤다 떨어진다

어딘가 억새풀 적시며 구름이 흘러
저물기 전에 한 차례 비바람아 불어라
나는 모든 억새들이 만드는 어둠 속을 거쳐
지나가리라 상머리에 한 마디씩 떨어지는 날들을

잠깨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거려 다시 재우며
숨어서도 너는
마침내 가수가 되어 가는구나
오, 한밤이 끝나고 또 어둠이
우리들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비가 내린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荒天 어디로
우리들의 서른 살이 물거품처럼 떠올랐다가 꺼져
가는 것이 보인다


김명인은 <동두천>의 시인이다. <동두천>에 버금가는 시편이 <영동행각>인 것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의 고향 후포는 태백산맥이 급하게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농토가 협소하다.
사람들은 드넓은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가난은 대물림 되었고 젊은이들은 원영어선을 타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것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술 마시면 주정을 하는 친구는 원양어선을 타고서도 빈손으로 귀향을 했다. 그가 다시 울릉도로 떠나는 날 수평선은 홀로 흔들리고 있었다.
가난은 생생하고 낚시를 물고 삼각파도 위에 솟구쳤다 떨어지는 청년은 아마도 시인 자신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억새들이 만드는 어둠 속을 통과 하리라고 선언 하지만 절망적인 날들은 계속되고 어린 아이를 재우는 여자는 가수의 꿈을 설익힌다.
하염없이 내리는 서른 살의 비는 희망의 상실로 아프다. 그 절망이 젊은 날의 김명인의 초상이며 우리들의 초상이었다.
(김윤배/시인)